2. 티베트 case
3. 비교연구
ⅰ. 중앙정부의 힘
■코소보
■티베트
ⅱ. 국제사회에의 환기
■코소보
■티베트
4. 결말
코소보는 발칸 반도에 위치한 신유고 연방 세르비아 공화국에 속해 있는 하나의 주다. 이 지역은 본래 세르비아 왕국의 근거지였는데, 1389년 터키제국이 이곳을 지배하면서 이슬람계인 자국내 알바니아인들을 대거 이주시켰고, 그 결과 현재 알바니아인들이 90%(180만 명)를 차지하고 있다. 이 지역은 세르비아계가 일구어 놓은 수많은 유적지와 교회들이 밀집해 있어 세르비아로서는 성지에 해당된다. 20세기 초 터키의 지배가 끝나면서 코소보는 세르비아에 통합되었으며, 이로 인해 이 지역의 민족 분규가 시작되었다. 1945년 티토(Josip Broz Tito. 1953-1980) 주도하에 구 유고슬라비아가 성립된 후에는 코소보에 자치주의 지위를 부여했지만, 1989년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c) 세르비아 대통령은 ‘대 세르비아 건설’이라는 민족주의적 가치아래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였다. 코소보 알바니아인(전체 200만 주민의 90%)은 이에 대항하여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요구하였고, 양 민족 간 갈등은 증폭되었다. 그리고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은 1992년 마침내 코소보공화국을 선포하였고,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간의 빈번한 무력충돌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발칸반도의 정세는 보스니아 사태의 중요성이 워낙 엄중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코소보 문제는 쟁점화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95년 11월 데이튼 평화협정에 의해 보스니아 사태가 진정의 기미를 보이자, 코소보 알바니아계는 코소보해방군(KLA)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무장 투쟁 양상을 보였고, 이에 대해 세르비아도 코소보 해방군에 대한 전면적인 소탕작전을 감행하였다.
그런데 1998년 2월말 신유고 남부 알바니아계 밀집거주지역인 코소보에서 알바니아계 코소보 분리주의자들과 세르비아공화국 경찰과의 무장충돌로 알바니아인 16명과 세르비아 경찰 4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3월에는 세르비아의 무력사용에 항의하는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고, 세르비아가 강경 진압으로 대응하는 등 분쟁이 확산되었다. 이때,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신유고연방에 대해 유사시 군사개입 및 경제재제 가능성을 강력히 경고하면서 평화적 해결을 위한 당사자간 대화를 촉구하였다. 특히 미국은 신유고연방과의 관계개선 방침을 철회하고, EU 의장국인 영국도 밀로셰비치 대통령을 만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였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