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녀와 비형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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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화녀와 비형랑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도화녀와 비형랑 설화 내용
2. 등장인물 설명
3. 진평왕의 아들 비형랑
4. 비형랑과 용춘의 관계
5. 설화의 의의
6. 설화에 나타난 정치적 배경
7. 신라인의 사랑과 정조관
8. 설화와 관련된 시와 그 의미, 노래
9. 설화와 관련된 유적
10. 오늘날 이와 비슷한 이야기와 이러한 문화적 현상의 의미
11.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도화녀와 비형랑 설화 내용

제25대 진지왕 때의 일이다. 사량부 백성의 딸이 있어 자색이 곱고 아름다워 세상 사람들이 부르기를 도화랑(桃花娘)이라고 하였다. 왕이 소문을 듣고 궁중으로 불러들여 상관을 하려고 하니 여자가 말하기를, “여자가 지킬 도리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남편이 있으면서 어찌 다른 데로 가오리까. 비록 천자의 위엄으로도 끝내 절조는 빼앗지 못하오리다.”하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너를 죽이면 어쩌려느냐?” 고 하니 여자가 말하기를, "여자가 지켜야 할 것은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는 것이옵니다. 지아비를 두고 다른 남자에게 가게 하는 것은 비록 제왕의 위엄으로써도 결코 안 되는 일이옵니다. "왕은 도화녀을 위협해 보았다. "죽어도 좋은가?" 도화녀는 태연히 대답했다. "차라리 저잣거리에서 목을 벨망정 지아비 밖의 다른 남자를 따르고 싶진 않사옵니다. 진지왕이 “남편이 없으면 될 수 있겠지?” 하니 여자가 좋다고 하였다. 왕이 그녀를 놓아 보냈던바 이 해에 왕은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죽었다. 그 후 2년 만에 그의 남편도 죽었다. 남편이 죽은 지 열흘 만에 갑자기 밤중에 왕이 평상시처럼 여자의 방에 들어와서 말하기를, “네가 예전에 승낙을 하였고 지금은 네 남편이 없으니 내 말을 듣겠느냐?”고 하였다.
여자는 경솔히 승낙을 못하고 그의 부모에게 고하였더니 그 부모가 말하기를, “나랏님의 말씀인데 어찌 어기겠느냐” 하고 그 딸을 방으로 들게 함으로써 이레 동안 왕이 머물게 되었는데 언제나 오색구름이 지붕을 덮고 향기가 방에 가득 찼다. 이레가 지난 뒤에 왕은 홀연히 자취가 없어졌다. 여자는 이로 인하여 태기가 있어 달이 차자 해산을 하려는데 천지가 진동하면서 사내아이 하나를 낳으니 이름을 비형(鼻荊)이라 하였다. 진평왕이 이 신기한 소문을 듣고 데려다가 궁중에서 길렀다. 나이 열다섯 살이 되어 집사 벼슬을 임명하였더니 그는 밤마다 멀리 도망 나가 놀았다. 왕이 날랜 군사 50명을 시켜 지켰으나 매번 월성(月城)을 뛰어넘어 서쪽으로 황천(荒川) 천변에 가서 뭇 귀신들을 데리고 놀았다. 군사들이 숲 속에 엎드려 엿보았더니 귀신들은 여러 절에서 새벽 종소리가 들리면 저마다 흩어지고 형랑도 돌아왔다. 군사들이 이 사실을 아뢰니 왕이 비형을 불러 말하기를, “네가 귀신들을 데리고 논다 하니 참말인가?”하니 비형랑이 “그렇소이다.”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 《삼국유사》「기이편(紀異篇)」
° 도화녀·비형랑 설화를 통해 본 신라 육부 통합과정 /김민혜
° 필수창 「도화녀와 비형랑」
° 정만호 「길달문 밖」
° [한국사] 삼국유사소재의 「도화녀, 비형랑」조를 통해 본 진평왕의 즉위과정과 동왕대 초기의 정치상황의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