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포로가 된 왕자들
2. 광해군의 균형 외교
3. 조선왕조실록과 두 종류의 광해군 일기
4. 인조 반정과 호란
5. 소중화
二. 당쟁
1. 당쟁의 경위
2. 나주 나씨와
3. 당쟁에 대한 평가
三. 지배 체제의 개편
1. 세제의 변혁
2. 균역법
3. 호적과 양안
4. 전통 농법의 성립
四. 전통의 형성
1. 네덜란드인이 본 17세기의 조선
2. 친족제도의 변화
3. 마을의 형성
4. 장시와 상업
5. 상업의 위치
3. 조선왕조실록과 두 종류의 광해군 일기
국왕의 일대기를 의미하는 실록은, 당대 이후부터 국왕의 사후 편찬하도록 제도화 되어있다. 조선에서는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부터 편찬을 확인할 수 있으나, 각 왕대의 실록이 모두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실록과 달리 고려시대의 실록은 현존하지 않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사, 주변 나라와의 통교, 교섭을 통해 중국사, 일본사, 유구사 등의 사료로써 가치가 있다. 이러한 조선왕조실록이 완전한 형태로 현존하는 것은 여러 부를 분산 보관하였기 때문이다. 15세기 중반 이후부터 한 부반 작성하던 실록을 네 부를 인쇄해서 4개의 사고에 각각 분산, 보관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주 사고의 실록만이 남아 있어 다시 네 부를 더 인쇄하여 5개의 사고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17세기 이후에도 춘추관 사고는 자주 피해를 보았지만, 네 개의 사고는 강화를 제외하고 조선이 멸망하는 날까지 완전한 형태로 보관되었다. 그러나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현재 완전한 형태는 두본 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선왕조실록은 27대 31종의 실록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러한 이유는 선조, 현종, 경종이 당쟁으로 인해 두 종류가 편찬되어있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광해군일기의 경우 정본과 본래는 폐기하는 실록의 초안인 증초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중초본이 정본의 두 배 이상의 분량을 가지고 있고, 정본은 중초본에 없는 문장들이 더해져있어 중초본과 정본은 별개의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광해군이 사르후 전투에서 미리 항복하도록 밀명을 내렸다는 것은 정본의 단계에서 부가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사는 광해군의 명에 대한 배신을 강조하기 위해 삽입한 것이라 보여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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