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 신라의 여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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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고대사] 신라의 여왕들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여왕들의 즉위 배경
3. 여왕의 통치
(1) 선덕왕과 知機三事
(2) 진덕왕과 대당외교
(3) 진성왕과 민중의 저항
4, 여왕통치에 대한 인식
5. 나오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우리의 역사는 대부분 남성 위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여성의 위치는 지극히 미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여왕이 통치를 했던 시기는 30여 년 정도에 불과하다. 이 짧은 기간 동안의 여왕 통치를 두고 여성의 국정통치 능력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라의 세 여왕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오랜 역사 속에서 유독 신라에만 여왕이 존재했던 이유는 무엇이며 당시의 여왕통치가 왜 좀더 나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하는 필요에서 일 것이다. 그리고 여왕에 대한 평가에서 부당하게 매도된 부분은 없는가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2. 여왕들의 즉위 배경
우리 역사상 3명의 女王이 기록에 나타난다. 이 3명의 여왕들은 모두 신라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당시 신라사회의 특수한 사정에서 비롯된 점이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왕은 선덕여왕이다. 신라 진평왕이 사망한 뒤 장녀인 선덕여왕이 제27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三國遺事』선덕여왕 즉위기사에는, 진평왕에게 아들이 없어서 國人이 추대하여 세웠다고 하였고, 『三國史記』에는 聖骨남자가 단절되었으므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고 하고 있다. 결국 선덕왕의 즉위는 진평왕에게 아들이 없는 데다, 왕위에 오를 만한 성골 남자 또한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시의 왕위 계승도를 그려보면 진평왕 이후 왕위를 이을 만한 인물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의 4촌 동생이며, 둘째 사위인 김용춘 (용수)이 생존해 있었고, 용춘의 아들인 김춘추(태종무열왕)도 정계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들 용춘과 춘추가 성골이 아니기 때문에 왕위에 오를 수 없었다고 한다. 진평왕의 즉위한 후에 진지왕의 직계들은 왕궁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그 왕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성골 집단이 만들어지고 그 범위를 벗어난 왕족은 왕궁을 떠나 성골 거주 구역이 아닌 곳에 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왕궁을 떠나서 거주한다는 것은 성골 신분을 잃고 진골 신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진지왕의 아들 용수는 골품제의 원리에 따라 왕이 될 수 없었다.

진평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실제로 성골 남자는 모두 없어진 것이 분명하다. 그 결과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성골 신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