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초에 상해와 만주에서 군위안소가 설립․운영되었으며 1937년 남경학살사건을 계기로 중국, 조선, 일본 등지에서의 위안부 모집이 군 개입을 중심으로 조직적,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군위안부 모집에는 속임수와 강제적 구인이 이용되었고, 위안소 내에서는 엄청난 인권 유린이 행해졌다.
전후 위안부들은 많은 경우 전지에 버려지거나 심지어 학살되기도 했다.
1933년 하와이 대학에서 한국 정신대 대책협의회의 강연이 있었고 노라 옥자 켈러는 우연히 황금주 할머니의 증언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1965년 서울에서 한국인 여성과 독일계 미국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후 6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현재 호놀룰루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건축업을 하는 남편 사이에서 딸 하나를 두고 있다. 미국인 1.5세인 그녀가 그 강연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 충격은 한국에서 한국 여인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한국 여성들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중요하다. ‘그녀는 바로 나의 어머니 또는 할머니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머니라는 피로 이어져 있는 나라의 여성들이 겪은 악몽이지만 자신은 어쩌면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나라의 여성이라는 입장. 이 이중성이 켈러의 「종군위안부」의 내용과 형식의 요체를 이룬다.
모국과 모국어의 차이. “나는 누구인가”로 귀착되는 자기 정체성의 혼란은 이 작품의 한계이기도 하고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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