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요약][고대사] 신라중고기의촌제와지방사회의구조
一.고중기 [村]의 성격
二.촌제의 성립배경
三.촌제 하의 지방사회구조
머리말
6세기에 신라는 농업생산력의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 비약적 발전을 시작하였다.신라는 고구료,백제와의 대결을 통해서 사방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가면서 영역에 대한 편제를 진행하였고,정복 전쟁을 계속 수행해 나가기 위하여 기존의 진한 소국에 대해서 직접 지배를 추구하였다.소국의 지배질서를 온존시키기면서 재지지배층을 통하여 간접 지배하는 방식에서 재지수장층을 신라국가의 행정체계 내로 편제하여 직접적인 지배를 실현하려고 하였다.
一.고중기 [村]의 성격
고중기 촌에 대한 확실한 자료는 6세기의 금석문 비문에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村][城][牟羅][谷]은 단순한 행정단위로서만이 아니라 지방민의 출신지를 나타내는 지역단위를 의미한다.이들을 신라에 편입된 기존의 읍락 집단을 의미하고 있으며,동일한 성격의 집단을 지칭하고 있었다.이들이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 것은 지역집단간의 세력격차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집단이 처한 자연적 환경이나 인위적 환경에서 기인한다.
기존의 읍락집단이 신라 국가질서내로 편제되면서 산성이나 토성이 있는 읍락집단은 성으로 호칭되고, 성이 없는 읍락집단(邑落集團)은 촌으로 편제되었다.
중고기의 촌은 통일 후에 군이나 현이 되는 대규모의 지역집단이었다.
촌이 신라 지역내의 지역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금석문에서는 503년이며,문헌사료에서는 5세기 전반 눌지왕대이다.
二.촌제의 성립배경
1.4-5세기 읍락사회의 변동과 호민층의 성장
6세기의 신라의 촌은 제소국내의 읍락들을 국가질서내로 편제하면서 성립하였다.소국내의 읍락들은 [干]적 존재의 지배 아래에서 맺어진 지역집단으로서 자립성이 강하였으며,소국은 이러한 읍락들이 국읍을 중심으로 누층적으로 결합한 정치.경제적 통합체였다.하지만 제계층간의 정치.경제적 관계가 변함에 따라 변질되어갔다.따라서 촌제의 성립배경을 찾는데 있어서 읍락내의 계층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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