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생활 속의 술(酒)

 1  조선후기 생활 속의 술(酒)-1
 2  조선후기 생활 속의 술(酒)-2
 3  조선후기 생활 속의 술(酒)-3
 4  조선후기 생활 속의 술(酒)-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조선후기 생활 속의 술(酒)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조선시대의 술과 신분
2.조선 후기 주막의 증가
3.금주령(禁酒令)
Ⅲ 결론
본문내용
2 . 조선 후기 주막의 증가

조선 후기 상업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하여 상인들은 커다란 재물을 모을 수 있게 된다. 이로 인해 중인층이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게 된 것이 술 소비량의 증가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많아진 물자의 이동으로 인하여 이동하는 길목이나 물자가 모이는 장소(장시 같은 곳)에 주막이 생겨 사람들이 술을 더욱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도 술의 소비량을 높이는데 한 몫 한다.
조선 전기에는 술을 파는 곳은 있어도 술을 사서 그 곳에서 마실 수 있는 주막 같은 곳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술은 대개 자가(自家)의 양조주(釀造酒) 양조주 : 곡류나 과실 따위를 발효시켜서 만든 술.
이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관청에서도 술을 빚었다. 그 밖의 경우는 당연히 술을 담가 판매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에게 술을 사서 마셨다. 강명관, 위의책, p. 128


수십년 전만 하더라도 도성 내외에 주호(酒戶)는 겨우 백여 곳 정도여서 좋은 술을 구하려는 자는 반드시 멀리 있는 타부(他部)의 마을 교외에서 구하였고 또한 큰 가게도 없었다.
근년에 이르러 도민의 술을 좋아하는 습속과 이익을 쫓는 풍습이 일변월이(日變月異)하여 5부 40여 방의 방방곡곡에 주렴(酒帘) 주렴 : 술집의 표지로 세우는 깃발
을 꽂고 있어 10실(室)의 마을에 5호가 주호(酒戶)로...(후략)《승정원일기》 601책, 영조 원년 (1725년) 9월 24일


이와 같이 조선 후기 술을 파는 곳은 급속하게 늘어났다. 여기서 나타나는 주호(酒戶)가 술만 파는 곳뿐인지 아니면 주막을 포함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평민의 술 소비량이 늘어났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런 술 소비량의 증가는 신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뜻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눈에 띄는 술 소비량의 증가가 나타난 것에는 상업의 발달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요소도 작용하였다. 바로 금주령(禁酒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