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전(傳)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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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허균의 전(傳)에 대한 연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1. 들어가며
2. 개별 작품 살펴보기
3. 전과 소설의 경계와 허균의 전
4. 도교사상과 허균의 전
5. 나가며
6. 참고자료

본문내용
③「장산인전(張山人傳)」
장산인의 이름은 한웅인데, 3대를 내리 의원으로 가업을 삼았다. 그의 아버지는 귀신을 부릴 수 있었는데, 나이 98세에 산인에게 《옥추경》과 《운화현추》라는 책을 주었고 산인 역시 그 책을 수만 번 읽어 귀신을 부릴 수 있었다. 또한, 나이 40에 지리산에 들어가 이인(異人)을 만나 연마법을 배웠고 도교의 진리를 닦는 책을 읽었다. 그는 호랑이를 타고 다녔으며 흉가의 뱀을 죽였고 죽은 물고기와 꿩을 살리고 어두운 밤에도 가는 글자를 읽었다. 그러다 임진년(1592) 5월에 소요산에 들어가 산 속의 스님에게 화장을 부탁하고는 왜적이 이르자 자리에 앉은 채로 칼날을 받았는데 그의 피는 하얀 기름 같았으며, 시신이 꼿꼿한 채로 넘어지지 않았다. 곧 화장을 하니 서광이 3주야로 빛나 하늘에 닿았으며 사리 72알이 나왔다. 이 해 9월에 장산인이 강화도 정붕의 집에 나타나 사흘을 묵고 금강산으로 간다면서 떠났다. 정붕은 그가 죽은 것을 이듬해야 알았다.

④「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
전라도 임피에 사는 남궁두는 조부대로부터 아전으로 넉넉하게 살았는데 나이 30세인 을묘(1555)에 진사 급제하여 명성을 날렸다. 그는 시골에 첩 하나를 두고 전답을 관리하게 하고는 서울로 집을 옮겼는데, 어느날 첩이 이성당질(異性堂姪)과 간통하는 것을 목격하고 두 사람을 활로 쏘아 죽여 물이 고인 논에 묻고 돌아왔다. 그러나 종의 고발로 남궁두는 압송되었는데 그의 처가 관원들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하고 도망치게 하였다. 도망친 남궁두는 중이 되었다가 젊은 중의 소개로 무주 치상산에 가서 500여년을 산 장로를 만나 신선의 도를 수련했다. 스승은 임진왜란을 예언하면서 남궁두를 다시 세상으로 내려 보내고 남궁두는 세상에 내려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 이후 그는 용담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가 살면서 황정(黃精)과 솔잎만 먹어 몸이 건강하고 늙지 않았는데 허균이 부안에 있을 때에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많은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용담으로 떠났다.
참고문헌
• 박수천. 「허균의 전과 세계관」. 동양한문학회. 동양한문학연구 부산한문학연구 제5집, 1990
• 박영호. 『허균문학과 도교사상』. 태학사. 1999
• 이문규. 『허균 산문문학연구』. 삼지원. 1986
• 전준이. 「허균 전의 양식적 특성과 입전의식 연구」.성균관대 대학원. 2001.
• 조동일. 『한국소설의 이론』.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