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후기 불교의 현세적 성격에 관하여
2. 기복 신앙
3. 신라 후기의 득도 방법
4. 현세주의 불교는 왜 일어났나?
5. 후기
기복 신앙이라 함은 복을 기원하여 자신이 뜻하는 바를 이루거나 일신과 가족의 안위를 누리고자 하는 목적으로 신앙심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위에서 언급 했듯 불교라는 종교는 내세를 위한 정진을 그 주로 하고 있지만 삼국 유사 택스트를 찾아보면 자신의 뜻하는 바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신앙을 찾는 경우가 상당히 많음을 알 수 있다. 흥법편에 보면 묵호자가 신라의 임금에게 향이 가지는 효험에 대하여 “신성한 것 중 삼보(三寶)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만약 이것을 불에 태워 소원을 빌면 반드시 영검이 있을 것입니다.” 삼국유사(도서출판 솔) 1권 388페이지
라고 말한 대목이 나오며, 같은 편에 “이에 집집마다 부처를 공경하면 반드시 대대의 영화를 얻게 되고 사람마다 불도를 행하면 마땅히 불법의 이익을 얻게 되었다.” 같은 도서 1권 408 페이지
라고 언급된 부분이 있다. 이는 불도를 행하면 복을 받는 다는 인과관계를 설명 함 으로써 권불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으나 명시된 대가가 깨달음이 아닌 물질적인 요소 이므로 이 역시 기복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이 두이야기는 각각 19대 눌지왕 때와 23대 법흥왕 때의 이야기 이다
그러나 탑상편 에서는 이와 조금 다른 기복신앙의 모습이 드러난다. “최은함이 늦도록 아들이 없었으므로 이 절의 관음보살 앞에 와서 기도했더니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다.” 같은 도서 2권 55 페이지
라는 대목과 경덕왕 때 희명 이라는 여자의 아이가 눈이 멀었으나 천수관음 앞에 나아가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자 낳았다는 같은 도서 2권 113 페이지
대목 역시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위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권선이나 권불의 조건이 없이 우선 위의 두 문장에서는 공통적으로 흔히 불교에서 자비와 상징하는 관음보살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최은함의 이야기는 926~929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고 희명의 이야기는 경덕왕 때의 사건으로, 두 이야기 모두 신라 후기로 접어들기 시작할 때의 이야기 이다. 또한 탑상편과 의해편에 관세음보살에 관해 기술된 이야기의 시대를 따져 보면 신라 후기가 가장 많다. 이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3. 신라 후기의 득도 방법
위 텍스트에서 살펴보았듯이 신라 초기와 후기 때의 불교에서 모두 기복신앙이 나타나긴 하지만 분명히 그 성격은 달랐다. 굳이 성격을 구분 하자면 초기 때가 후기 때 보다 신앙적인 측면이 강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후기 불교의 성격은 열반으로 이끌어 주는 존재라기보다는 소원을 들어주는 민간 신앙적 요소가 강해졌다. 왜 그런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 가를 알아보기 위해 민간 불교에 관련된 텍스트를 찾아보던 중 탑상편에 같은 책 2권 98페이지
이라는 텍스트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나이 스물에 함께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처음에는 둘 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세속적인 삶을 살았지만 곧 회의를 느끼고 진정으로 출가하게 된다. 그 둘은 서로 다른 암자에 살게 되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신라 성덕왕 8년 4월 8일날 어느 아리따운 여인이 박박이 살고 있는 북암에 찾아와 하룻밤 묵기를 청하는데 사찰은 깨끗한 곳이라는 이유로 내 쫓고 만다. 그러자 그 여인은 부득이 살고 있는 남암에 찾아가 똑같이 청하니 부득은 부녀와 함께 있는 것이 도리는 아니지만 중생의 뜻에 따르는 것 역시 보살행이라며 암자 안으로 맞아 들였다. 여인은 잠자리를 준비해 달라, 목욕을 같이 하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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