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화 소개
(1)이족 신화 ‘세 아가씨가 해를 되찾아왔다’
(2)한족 예(羿) 신화.
3. 비교 작업
(1)수직적/ 수평적 상상력의 차이
(2)신화가 가진 생명력
(3)권위의 문제
4. 결론
또 다른 차이는 신화가 가지는 생명력에 관한 문제다. 그것은 현실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잘 설명해 주느냐와 무관하지 않다.
예는 문제를 해결했음에도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아야 했고, 세 아씨는 비록 나이 들어 죽기는 했지만 이후에까지 추모한 대상이라는 점을 보자. 중요한 점은 세 아씨는 이족에게는 실제 인물로 생각되고 조상으로서 대우받으며 그들을 위한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차이는 예는 허구의 인물이고, 세 아씨는 실제 인물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세 아씨가 실제인물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믿어진다’는 데에 방점이 찍혀야 하고 그 믿음이 신화에 생명력을 준다.
그리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서 죽음을 맞은 세 아씨 이야기의 마무리는 더욱 그들을 현실적으로 만들어준다. 신화 속 주인공이 현실적이라는 말은 모순으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신화는 세상이 이렇게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고 세상 속에서 자기 부족의 존재 의미를 증명하기 위한 이야기이다. 그럴 듯 할수록 좋다. 세 아씨가 실제 세상을 위해서 해를 구해왔다는 이야기는 ‘현실적’인 요소를 통해서 더욱 실제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되고 이족의 큰 자랑거리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신화가 현실에서 필요로 하는 역할을 해줄 수 있어야 신화는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있을 수가 있는 것인데 이족의 신화는 이를 잘 수행한다고 할 수가 있다.
또 이족의 신화는 자신들이 스스로 태양을 구해온 이야기이지만 이족의 신화는 하늘에서 구해준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자립성과 의존성 같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예 신화는 누구의 신화인가? 한족의 신화라고 하지만 예가 구해준 것은 그저 세상 사람들이라고만 나와 있을 뿐 현실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신화는 그럴듯한 이야기로 세상의 기원이나 자기 부족의 정체성을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예의 신화는 누구의 신화도 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며 반대로 누구의 신화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반면 이족 신화는 ‘우리 할아버지의 무용담’처럼 가까이에 있는 이야기이다. 이족이라는 민족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이며 이족이라면 누구나 믿는 이야기라고 할 수 수 있다.
예의 신화는 이야기의 필요성에 의해서 존재하는 이야기이다. 한족 사람들에게 예는 세 아씨가 이족에게 지니는 의미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 대상이 되지 못한다. 같이 추모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조상으로서의 존재 말이다. 아무도 믿지 않는 신화와 민족 내에서 믿는 신화의 차이가 신화의 생명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3)권위의 문제
마지막 세 번째로 비교할 부분은 신화에서 드러나는 권위의 문제이다. 신화의 주인공이나 이야기의 전개에서도 예의 신화는 권위 있는 존재가 중심이 되고, 이야기 또한 그에 맞게 흘러간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야기의 처음서부터 끝에까지 유교 의식과 권위를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예는 천제라는 절대적 지위에 있는 존재에게서 명령을 받아서 태양을 없애기 위해 내려온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태양은 떨어질 때도 성스러운 황금색이다. 예는 영웅의 임무를 완수하며 죽을 때도 영웅인 채로 죽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비록 아내에게 배신당한 슬픔에 괴로워하기는 하지만 나이 들어 늙어서 능력을 잃고 죽는 모습은 아니다. 천제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예에게 하늘로 올라오지 못하는 벌을 줌으로서 그의 권위를 보여준다. 그리고 예는 천제의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면서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족의 신화에서는 다르다. 해는 올빼미 요정이 무서워서 숨어 나오지 않는 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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