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유럽통합사
3.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유럽통합사
4. 유럽의 부활
5. 結
제 2차 세계대전은 전쟁 전의 정치, 경제적 상황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함께 유럽통합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촉매 작용을 하였다. Derek W Urwin, 유럽통합사 12p, 대한교과서, 1994
저항운동가의 관심은 유럽의 미래와 재건에 모아졌다. 여기서 유럽통합사상이 재등장 하게 되었다. 즉, 주권국가는 정치 조직체의 기본단위가 아니며 전통적 국가 개념은 더 이상 수용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포괄적 유럽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여 국가 업무를 통합시키고, 이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점령된 유럽에 남아 있는 저항운동가들 사이에서만 유럽통합을 위한 외침이 강렬하게 전파되었다. 저항운동가들의 꿈은 전쟁 기간 중에 맺어진 동료애가 전후에도 지속되어 사회전체를 포용하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의 스피넬리는 1941년에 그와 동료들과 함께 벤토테네 감옥에서 유럽통합을 위한 선언서를 비밀리에 작성하여 유포하였다. 스피넬리에 의해 작성된 보고서의 대부분은 성문헌법을 가진 유럽연방의 창설을 주창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유럽 국민에 대한 책임은 각국의 정부가 아니라 초국가적 정부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초국가적 정부의 통제 아래 유럽은 단일 군대를 가지며 그 외 독자적인 군사력은 보유할 수 없다. 사법재판소는 초국가적 정부를 지원하며 연방 정부와 연방 주들 사이의 충돌을 중재하고 헌법을 집행하는 유일한 권위를 갖는다. 이처럼 저항 운동가들은 유럽을 잔인하게 속속들이 파괴시킨 나치에게 완전한 승리를 거둔 뒤에 유럽의 정치⦁경제⦁사회적 제도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바꿀 시회를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저항운동가들은 그들의 정치 활동에 대해 주요 연합국들로부터 암묵적 또는 명백한 지지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해방투쟁과정에서 보인 지도력과 헌신으로 전후 선거에서 대대적인 지원을 얻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저항운동의 시나리오에서 설정된 단계는 결코 실현되지 못했다. 그 단계는 저항운동가 세력들이 각국의 정부를 구성했을 때만 성취될 수 있었는데 구 정당 지도자들의 귀환으로 그들의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구정치인들의 복귀와 함께 권력 장악의 행운이 그들에게 기울었고 구습의 정치적인 태도와 속성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전 후 유럽은 세계경제에서 축소된 역할 미국의 지배적인 재정적, 경제적인 힘,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 독일재건 문제, 집단적 유럽협력에 대한 미국의 압력 증가 등 여러 문제들로 인해서 유럽정부들은 새로운 협조체제를 구상해야 했다.
강원택 외, 유럽의 부활, 푸른길, 1999
배영수, 서양사 강의, 한울아카데미, 2007
Paolo Cecchini, 유럽의 도전 1992, 형설출판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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