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사회복지] 멘토의 집 기관방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남자 선생님이 일을 마치고, 우리에게 오셔서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친절하게 우리에게 다시 인사해주셨다. 멘토의 집은 원장님을 포함한 총 3분의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1명의 공익근무요원이 있는데 공익근무요원을 제외한 유일한 남자 사회복지사 선생님이셨다. 어쩌면 우리들이 바쁜데 봉사 하는 것도 없이 보고 인터뷰만 하고 가는 것이기에 매우 귀찮아 하실 수도 있을 텐데 전혀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 하는 동안 우리의 모든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주시며 더 질문할 것 없으냐며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임해주셨다. 멘토의 집에서는 어떤 프로그램들을 하고 있는지 물었더니 크게 낮프로그램과 그룹홈을 하고 있는데, 낮프로그램에서는 방과후 교실과 직업재활 교육 등을 통해서 클라이언트들에게 일상생활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기술들을 교육하고, 남자 4명, 여자 4명은 원장님(여자)과 남자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그룹홈을 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SEd에 대한 서비스가 없는지 궁금해서 방과 후 교실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았는데 책에서 배운 SEd의 내용보다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클라이언트들에게 기본적인 생활 기술들과 산책과 같은 야외활동을 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SEd에 대한 서비스가 없는 것이 아쉬워 혹시 클라이언트 중에 대학과 같은 고등교육에 대한 욕구가 없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는 전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셨다. 지적장애, 발달장애를 가진 클라이언트들에게 대학이 왜 필요한지 우리에게 물으셨다. 솔직하게 우리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학비도 많이 들고,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는 대학이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필요하지 않다는 게 선생님의 지론이셨다. 대신 이들에게는 우리가 배우는 것과 같은 교육이 아닌 수없이 시도하고 실패하는 것에서 배우는 경험의 교육이 효과적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진짜 현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저 갇힌 곳에서 이상적인 것만을 배우고 이상적인 것만을 추구해 왔다.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 분명히 이상적인 것이 존재하고 그렇게 만들 수 있는데 우리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핑계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상은 이상일 뿐인가? 아직도 답을 얻진 못했지만, 내가 좀 더 배우고 좀 더 많은 것을 보며 견문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이번에 대학에 한 명 가는 클라이언트가 마침 학교가 끝나고 왔다면서 우리에게 인사를 시켜주셨다. 자폐를 가진 클라이언트였다. 내가 대학 합격한 거 축하한다고 했더니 내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고 대학 합격한 거 자신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솔직하게 외면적인 것만 보면 이 클라이언트가 대학 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선생님께 이 질문을 여쭈어 보았더니 자신도 확신을 못한다며 일단 부딪쳐 보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이 클라이언트는 ‘이동고’라는 일반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사실 엄밀히 보면, 이것은 클라이언트의 선택이라기 보다는 부모님의 강건한 결단과 의지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 클라이언트가 처음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아 학교에서는 학생을 받지 못하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1년을 다니지 못했지만 부모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일반고등학교 진학을 도전하셨다. 멘토의 집에서도 클라이언트가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아 연락이 오면 직접 찾아가 수습하고, 클라이언트가 통제력을 가지도록 꾸짖기도 하고, 여러 가지 교육을 통해 클라이언트가 학교를 잘 다닐 수 있게 노력했다고 했다. 후에 발표 시간, 이 모습은 책에 나온 on-site model이라고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셨다. 멘토의 집은 SEd에 대한 인식이나 서비스가 없었지만, 클라이언트에 대한 직접적인 서비스에서 SEd모델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던 것이었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던 클라이언트가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선린대학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다. 물론 클라이언트의 의지와 선택이 전부가 아닌 부모님의 자녀를 향한 끝없는 지원과 장애를 가진 우리 아들도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그렇지만, 하지 못할 것 같던 장애인이 해냈다는 것을 처음으로 직접 눈으로 보면서 ‘희망’이라는 것은 절대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