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촛불집회 그리고 서해교전
서론
본론
결론
서해교전 참수리 357호
대체 우리는 왜 서해교전에 관심을 갖지 못하였을까?
서해교전은 월드컵이 끝날 즘에 발생하였고 우리 나라 군의 최고 지휘권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건을 보고 받았음에도 불구 하고 월드컵 결승전을 관람하기 위하여 일본으로 떠났다. 군의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별다른 조치 없이 월드컵의 열기를 이어가자 우리는 서해교전자체에 관심을 갖지 못하였다. 이는 대통령 스스로 이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 그 미국의 부시 대통령 조차도 미군군인 한명의 죽음에 기자회견을 열고 그에 대항 대응을 국민들에게 알려준다. 때론 눈물까지 보이며 국민들과 함께 슬픔을 공유한다. 그 눈물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이 달콤한 월드컵 환상에서 깨어 나길 바라지 않았고 인위적으로 사건을 축소화 시킨다. 권력과 언론은 그 이해관계에 따라서 함께한다.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감추고 싶어하는 일을 밝히고자 하는 언론의 노력은 미비했다. 그들은 앞다투어 월드컵 열기를 전하기에 바빠서 서해교전은 하찮은 일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월드컵이 끝나고 사건이 일어난지 한참이 지나서야 서해교전은 정치적으로 이슈화 되기 시작했다. 당시 언론 및 군관계자, 그리고 정치인들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 서해교전 발발 직전 북한군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우리군이 상부에 그러한 상황을 보고 하였느나 햇볕정책이 한창이고 월드컵 열기가 끝에 오른 그 시절 상부의 지침은 "지켜보라" 단지 그것뿐이었다. 많은이의 생명과 안전이 달려 있는 일에도 불구하고 섵불리 행동할 수 없었던 그들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때마침 훈련중이던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이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서해교전에 대한 책임으로 궁지에 몰려있던 정치인들과 언론인으로써의 의무에 심한 타격을 받은 언론매체들은 앞다투어 사건을 이슈화 시키기 시작했다. 월드컵 이후 아직도 월드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 여운에 젖어있던 대중들은 그 여운을 이어줄 동기가 필요했다. 또한 이나라의 스승들이라 불리는 이들은 우리 군인들의 안타까운 죽음에는 조용하였지만 여중생들의 죽음에 앞다투어 시휘참여를 종용하였다. 서해교전은 엄연한 적군에 도발에 의한 사망이었고 여중생들은 훈련중 일어난 사고였다. 누군가의 죽음에 가치의 높고 낮음을 매길순 없지만 적어도 그 여중생들보다 우리군인들의 죽음이 가치가 낮다고 할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흔희 스승이라 불리는 전교조 교사들은 여중생의 죽음에 그 가치를 높게 매겼었던 것 같다.
이러한 반미여론과 촛불집회는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대선에 이용되어 졌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들에게 힘이 될만한 사건을 원했고 국민들의 위기감과 긴장을 야기 시키는 서해교전대신 월드컵과 안타까운 여중생의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언론은 특히 가장 영향력이 큰 미디어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방송들은 국민의 알권리와 진실을 알려야 하는 그들의 의무와는 달리 필요와 선택에 의해 국민들에게 뉴스를 보도했다.
난 예전 고 김선일씨 사건도중 서해교전중 전사하신 황도현중사 동생분의 글을 읽은적이 있다. 글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죄송함과 안타까움뿐이 었다. 고 김선일씨 물론 안타까운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왜 이라크에 갔는지 무엇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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