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한루원과 조선시대 정원과 사상의 연관

 1  광한루원과 조선시대 정원과 사상의 연관-1
 2  광한루원과 조선시대 정원과 사상의 연관-2
 3  광한루원과 조선시대 정원과 사상의 연관-3
 4  광한루원과 조선시대 정원과 사상의 연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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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광한루원과 조선시대 정원과 사상의 연관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광한루원의 역사
3. 광한루원의 건축물
4. 조선시대 정원과 사상의 연관
5. 맺음말
본문내용
광한루의 산책은 ‘청허부’라는 현액이 걸려 있는 정문인 남문을 통해 들어선다. 오른쪽의 산책길에 들어서면 대나무 숲의 춘향사를 보게 된다. 춘향사는 춘향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그리고 좀 더 가다보면 춘향의 아버지로 추측되는 남원부사 성안의의 비석이 있다. 이 곳을 지나면 광한루에 이르게 되고 그 앞 쪽에 오작교가 있는 연못이 있다. 먼저 광한루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하자면 보물 제 281호이며 유적건조물로 누정으로 분류되어 있다. 광한루는 연못가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고, 막돌바른층쌓기 자연의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들을 가로축선을 일치시켜서 쌍은 것.
로 된 낮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사각의 돌기둥을 세워 마루 밑에 이르게 하고 나무기둥을 그 위에 세운 정면 5칸 측면 4칸짜리 중층 팔작기와집 지붕 위까지 박공이 달려 용마루 부분이 삼각형의 벽을 이루고 처마선은 양끝 추녀로 갈수록 오르는 곡선으로 되어 있는 기와집.
이다. 오른쪽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가 붙여져있다. 주위는 계자난간 위는 구부정하게 내밀고 덩굴무늬가 새겨져 있는 각을 세운 난간.
을 둘렀으며, 기둥 사이에는 모두 복합문의 들창을 달아 시야가 시원하도록 하였다. 동쪽에 이어져있는 익루는 삼면을 툇마루를 돌려 개방하고 그 안쪽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따라서 익루의 1층은 온돌방 아랫부분이므로 벽체로 두르고 여기에 아궁이와 굴뚝을 들였다. 광한루 뒤쪽으로는 누에 오르기 위해 만든 층단이 정면 1칸 측면 3칸의 회랑식으로 가설되었다. 광한루의 본관이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지자 고종 14년에 부임한 남원부사 이용준이 기울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리산 자락』, 돌베개, 1996, p.115, 인용.
광한루 앞의 연못은 1:2의 비율을 갖는 장방형으로 축조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삼신산을 본떠 만든 인공섬 세 개가 있다. 정철이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영주섬에는 연정(연꽃을 구경하기 위하여 연못가에 지어 놓은 정자)을, 봉래섬에는 배롱나무(백일홍)를, 방장섬에는 방장정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영주섬에는 방장정이, 방장섬에는 영주각이 있다고 한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리산 자락』, 돌베개, 1996, p.115, 인용.
이들 위에 있는 오작교는 난간없는 네 개의 홍예 문의 윗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문
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연못의 한 귀퉁이에는 자라상이 있다. 이는 삼신산이 조성될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신선사상에 연유해 자라로 보는 전설과 풍수지리상 천재지변을 몰고 오는 지리산의 동남풍을 제압하기 위한 거북으로 보는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오작교 건너에는 완월정이 있는데 이는 1969년 광한루원 확장시에 새로 지은 수중누각이다. 광한루가 달나라의 궁전을 재현한 것이라면 완월정은 지상의 사람이 달나라를 즐긴다는 뜻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4. 조선시대 정원과 사상의 연관

1)유교사상
먼저 유교사상과 연관시켜보면 선비들이 도리를 지키며 수신하는 은거지로서의 성격을 띈다. 약간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낙향한 선비의 도피처로 볼 수 있지만 선비들은 정원에 머물면서 세속에서 벗어나 근원적인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2) 성리학적 요소
유교적 요소는 정원 속의 구체적 형태나 상징적 형태에 나타나는 예는 잘 없지만 성리학적 요소는 군데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방지원도형 연못 외곽이 사각형인 연못 가운데에 원형의 섬을 꾸며놓은 것,
은 우주의 생성과 구조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 밖에도 정원 속의 자연물에 이름 붙이는 것 또한 성리학적 요소가 가미된거라고 할 수있다.
3) 도가사상
선비들은 도가사상의 무위를 본받아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정원에서 택하였다. 정원의 자연물들을 보며 안정을 찾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는 생각으로 정원에서 머물렀다. 이러한
참고문헌
홍광표, 이상윤, 정운익 共著, 『한국의 전통수경관』, 태림문화사. 2001.
주남철, 『한국의 정원』, 고려대학교출판부, 2009.
허 균, 『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세계』, 도서출판 다른세상, 2002.
역사경관연구회, 『한국정원답사수첩』, 도서출판동녘, 2008.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리산 자락』, 돌베개, 1996.
강봉진, 「남원 광한루 실측보고」, 건축 제15권 제2호, 대한건축학회, 1971.6, pp. 44 ~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