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창경궁의 주요건물
3.창경궁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
4.참고문헌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이며, 임금이 신하들의 조하를 받았던 곳이다. 정면 다섯칸, 측면 세칸, 모두 열다섯 칸인 동향집으로 인정전보다 다섯 칸이 작고, 지붕은 단층이며 팔작지붕 구조이다. 현존하는 조선왕조 정전 중 가장 오래되었고, 국보 제226호로 지정되어있다. 명정전은 인종이 즉위한 곳이기도 하다. 중종이 창경궁 환경전(歡慶殿)에서 별세했으므로 인종은 창경궁에서 즉위할 수 밖에 없었다.일이 있었다. 정조는 친위부대인 장용영(壯勇營)을 창설하여 서울과 수원에 주둔시켰는데, 그 일부가 창경궁 명정전 행각에 주둔했다. 고종 19년(1882)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명성황후가 창덕궁에서 홍계훈의 등에 업혀 가까스로 몸을 피한 일이 있었는데, 이 때 대원군은 황후가 별세했다고 포고하고 장례식을 창경궁 환경전에 차리고, 망곡처(望哭處, 상여가 나갈 때 곡을하는 장소)를 명정전으로 정했다. 살아있는 황후의 장례를 치르는 기막힌 역사가 여기서 벌어진 것이다. 또한 고종 28년(1891)에는 익종의 비 신정왕후 조씨가 경북궁 흥복헌에서 별세했는데, 혼전(魂殿, 국장을 치르는 동안 신위를 모시던 전각)울 명정전으로 정했다고 한다. 명정전은 옛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있고, 주변의 회랑은 일제강점기에 헐려나간 것을 1980년대에 복원했다.
명정전 남쪽에는 임금의 편전인 문정전(文政殿)이 있다. 문정전은 신하들을 소견하고 경연을 행하는 곳이다. 경복궁의 사정전이나 창덕궁의 선정전과 같은 기능을 하던 건물이다. 문정전은 남향집이며 정면 네 칸, 측면 세 칸으로 모두 열두 칸이다. 명정전과 문정전 사이 그리고 문정전 남쪽에 복도를 설치하여 비를 맞지 않고도 여러 건물을 왕래할 수 있도록 건설되었다. 문정전은 사도세자의 비극이 일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영조 38년(1762) 5월13일 세자를 불신하던 영조는 세자를 폐서인 시키고 뒤주에 가두도록 명을 내렸다. 그리하여 8일 만인 5월21일 세자는 창경궁 남문인 선인문 부근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이 사건을 임오화변(壬午禍變)이라 한다. 2년 뒤 영조는 세자의 죽음을 뉘우치고 이라는 글을 써서 도승지를 시켜 휘령전 요 밑에 숨겨두었는데, 정조가 즉위 후 발견하여 정조 17년에 비로소 신하들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또 문정전은 고종 15년(1878)에 별세한 철종비 철인왕후의 혼전으로 사용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헐려나간 문정전은 해방 후 다시 중건되었지만, 문정전 중앙에 남북으로 설치한 복도는 되살리지 않아서 ④와 그 모습이 다르게 남아있다.
3) 숭문당(崇文堂), 함인정(涵仁亭), 취운정(翠雲亭)
한영우,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열화당, 2006
한영우, 다시 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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