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시인의 바람의 사생활을 읽고
봉인된 지도
무늬들
겹
그리움을 밀면 한 장의 먼지 낀 내 유리창이 밀리고
그 밀린 유리창을 조금 더 밀면 닦이지 않던 물자국이 밀리고
갑자기 불어닥쳐 가슴 쓰리고 이마가 쓰라린 사랑을 밀면
무겁고 차가워 놀란 감정의 동그란 테두리가 기울어져 나무가 밀리고
길 아닌 어디쯤에선가 때 아닌 눈사태가 나고
몇십 갑자를 돌고 도느라 저 중심에서 마른 몸으로 온 우글우글한 미동이여
그 아름다움에 패한 얼굴, 당신의 얼굴들
그리하여 제 몸을 향해 깊숙이 꽂은 긴 칼들
밀리고 밀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이름이 아니라
그저 무늬처럼 얼룩이 덮였다 놓였다 풀어지는 손길임을
갸륵한 시간임을 여태 내 손끝으로 밀어보지 못한 시간임을
나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우리가 마치 보고 있는 것같이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내는 시인들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밑에 적어놓은 ’무늬들‘이란 시에서는 그리움의 두께와 무게를 유리창의 먼지로 표현하고 밀어내도 잘 밀리지 않는 아쉬움을 물자국으로 표현한다.
정말 엄청나다!! 와 존경스럽다. 이런 표현력 시인의 두뇌구조는 어떻게 되어있는 것인가.
이병률 시인은 이런 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그가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를 우리로 하여금 마치 글을 읽는 것이 아닌 하나의 그림을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겹
나에겐 쉰이 넘은 형이 하나 있다
그가 사촌인지 육촌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모른다
태백 어디쯤에서, 봉화 어디쯤에서 돌아갈 차비가 없다며
돈을 부치라고 하면 나에게 돌아오지도 않을 형에게
삼만원도 부치고 오만원도 부친다
돌아와서도 나에게 전화 한통 하지 않는 형에게
또 아주 먼 곳에서 돈이 떨어졌다며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나는
나는 그가 관계인지 높이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잘 모른다
단지 그가 더 멀리 먼 곳으로 갔으면 하고 바랄 뿐
그래서 오만원을 부치라 하면 부치고
십만원을 부치라 하면 부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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