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이념 도입과 확산
(1)사회주의이념 수용·확산의 여러 계기
(2) 해외 한인들의 사회주의이념 수용
(3) 사회주의이념의 국내 확산
조선공산당 조직과 활동
(1) 창당준비과정
(2) 제 1,2차 조직과 활동
(3) 제 3,4차 조직과 활동
조선공산당의 정치노선
조선공산당의 해체
맺음말 참고문헌
민족 독립이 전개되지 않는 계급해방은 성립될 수 없었다. 강대한 적인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중이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하고 여러 경향의 운동이 연대하기 위해서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중이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사회주의운동은 그 이념적 본질상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중을 운동의 주체로 설정하고 있었지 때문에 민중을 민족해방운동 전선에 나서게 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여러 민족해방운동 세력들과의 연대, 즉 민족통일전선의 결성에도 노력했다.
이 글에서는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을 민족해방운동의 한 흐름으로 파악하면서 1920년대의 사회주의운동사를 살펴보려 한다. 그 중에서도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이 한국 민족 해방운동 내부에 수용되어 1925년 조선공산당이 결성되는 과정, 뒤이은 수차례의 검거사건과 1928년 「12테제」에 의해 조선공산당이 사실상 해체되기까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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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길 외 공저, 『한국사』15, 한길사, 1995, 163~166쪽.
역사학 연구소,『함께 보는 한국근현대사』, 서해문집, 2004년, 169쪽.
장만길 공저, 위의 문헌, 167쪽.
박철화,「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단체 연구」, 숭실대대학원, 2003년, 92쪽.
역사학 연구소,『함께 보는 한국근현대사』, 서해문집, 2004년, 169쪽.
장만길 외 공저, 『한국사』15, 한길사, 1995, 170~172쪽.
신의주고려공산청년회원의 부주의한 폭행사건이었다.
장만길 외 공저, 『한국사』15, 한길사, 1995, 174~176/ 177~178쪽.
역사학 연구소,『함께 보는 한국근현대사』, 서해문집, 2004년, 170쪽.
3차당 간부진은 대체로 일월회 중심으로 만주고려공산청년회파와 서울계 신파가 합세한 형태이다.
이들이 화요계를 이어 중앙간부진을 구성했는데, 이 그룹을 세간에서는 엠엘(ML)파라고 불렀고, 3차
당을 엠엘당이라 불러다.
역사학 연구소,『함께 보는 한국근현대사』, 서해문집, 2004년, 170쪽.
노동자 출신인 차금봉은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 창립 때부터 노동운동을 지도한 사람으로 책임비서
로 선출한 것은 조선공산당의 노선이 좀더 근본주의적인 경향으로 나아가려는 조짐의 한 표현이었다.
장만길 외 공저, 『한국사』15, 한길사, 1995, 179~180쪽.
서울계의 사상단체인 전진회와 물산장려회계가 참가하는 제한된 연합전선인 조선민흥회가 1926년 10
월에 창립되었다.
조선일보 1926년 11월 17일. 라고 쓰여 있음
동아일보 1927년 5월 18일. 이라고 쓰여 있음
노정환, 「신간회와 그에 대한 우리의 임무」,『조선지광』73, 1927년 11월. 노정환은 안광천의 필명
이다.
일본에서 「27년테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반대파들이 1928년 2월에 노농파를 조직했듯이 우리
나라에서도 서울계 구파를 중심으로 1927년 12월에 춘경원당을 조직했다. 춘경원당은 동경에서『조
선운동』이라는 기관지를 발간하여 자신의 주장을 폈다.
제2차 조선공산당의 검사위원이었던 구연흠의 진술(강만길, 「독립운동과정의 민족국가건설론」,『한국민
족운동사론』, 한길사, ).
강만길, 127쪽.
서중석, 「해방후 좌우합작에 의한 민족국가건설운동 연구」,서울대 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 1990
제1,2차 조선공산당 검거 시에 언론관계자가 83명이었는데 조선일보 관계자만 해도 30명에 달했다.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2,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447쪽.
박종린,「1920년대 ‘통일’조선공산당의 결성과정」,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 1998,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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