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 수양제의 업적과 평가
2. 본론
① 수양제의 소개
② 수양제의 업적
③ 수양제에 대한 평가
3. 맺음말
이번의 주제는 수양제의 업적과 그에 대한 평가이다. 내가 이 주제를 잡은 이유는 우리가 배우는 중국의 역사에서 ‘수양제는 폭군인가’라는 제목이 있다. 이 것을 읽어 보니 수양제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우리들의 선입견을 버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기로는 수 양제는 대규모의 토목공사와 무리한 대외 원정으로 인해 백성들에게 원망을 사서 결국은 신하에게 죽음을 당하게 되고, 수나라 또한 망하게 된다. 그래서 수양제는 자기 마음데로 정치를 하고, 백성들의 생활도 생각해주지 않는 폭군의 대명사로 알려 지게 된 것이다.
여기서는 우선 수양제를 소개하고, 그리고 그의 업적과 그에 대한 평가를 순서데로 알아보고자 한다.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개론서를 중심으로 하여 본인의 생각을 간단히 서술하였다.
2. 본론
① 수양제의 소개
중국 수(隋)나라 제2대 황제이다(569~618(재위 604~618)). 이름은 양광(楊廣)이다. 양(煬)은 악한 황제를 가리키는 시호이다. 수나라 문제(文帝)의 둘째아들로 어머니는 문헌독고(文獻獨孤)황후이다. 처음에 진왕(晉王)이 되어 남조(南朝)시대 진(陳)나라 토벌에 활동하였으며, 600년에 형인 황태자 용(勇)을 실각시키고 스스로 황태자가 되었다. 권신 양소(楊素)와 결탁하여 황제 자리에 앉았는데, 그때 아버지 문제를 살해하고 그의 왕비를 범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즉위 뒤에는 만리장성을 수축하였고, 뤄양〔洛陽〕에 동경(東京;東都)을 영조(營造)하였으며, 남북을 잇는 대운하를 완성시키는 등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 백성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주었다. 자신은 대운하에 용주(龍舟)를 뛰우고 사치스런 순행(巡幸)을 하였으나, 남북을 잇는 대운하의 개통으로 강남의 물자가 북으로 쉽게 운송되어 남․북 융합에 크게 이바지하기도 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북방의 큰 세력이었던 돌궐(突厥)과 서방의 토욕혼(吐谷渾)을 공격하였고, 또 돌궐과 화친할 염려가 있는 고구려(高句麗)를 3번에 걸쳐 원정하였다. 특히 612년 제1차원정은 113만 대군과 그 2배가 되는 수송대를 동원한 대규모였는데. 고구려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다. 613년 제2차 원정 때에는 후방에서 양현감(楊玄感)의 반란이 일어나 2개월 만에 진정되었다. 그러나 그 뒤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수나라 말기는 반란기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것은 백성들의 과중한 혹사와 더불어 기근․수해까지 겹쳤기 때문이었다. 한편 지폐․율령을 정비하는 등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만년에는 전란을 피하여 경치가 아름다운 양쯔강〔楊子江〕 북쪽 해안에 가까운 장두〔江都;지금의 揚州〕로 옮겨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으나 신하인 우문화급(宇文化及)에게 살해되었다. 또한 열정적인 불교 신자로 천태종의 개조(開祖)인 지의에게 귀의하였고 지자대사(智者大師)라는 법호를 내렸다. 또 뛰어난 시인이기도 하여 대표작으로 《음마장성 굴행(飮馬長城窟行)》이 있다.
② 수양제의 업적
동양사개론, 1993, 삼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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