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엄사 개요
(2) 화엄사 역사
(3) 화엄사 국보, 보물, 천연기념물
(4) 화엄사 가는 길
이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셔와 4사자 3층 석탑(불사리공양탑)을 세우고 그 안에 사리를 봉안하였다. 4사자 3층 석탑은 화엄사의 창건주인 연기조사와 어머니의 전설을 담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14년(645)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불사리 73과를 모셔와 연기조사의 공덕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탑으로 불사리 공양탑이라고 한다. 전체적인 탑 모양은 연기조사께서 편단우견 우슬착지한 자세로 머리에 석등을 이고 있는데, 왼손으로 찻잔을 들고 찻잔 위에 여의주를 받쳐 어머니에게는 진리를 공양하고 부처님에게는 차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어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닌(不二)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그 후 의상대사가 화엄사에 주석하시면서 문무왕 10년(서기 670)에 3층의 장육전을 건립하고 사방벽면을 화엄석경으로 둘렀는데 이로써 화엄사는 대도량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어 나말여초에 화엄사에 주석하셨던 도선국사가 화엄사를 총림으로 키우니 이 때 개창 이래 최대 규모를 가진 대총림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광종의 어명을 받은 홍경선사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중수 및 보수가 이루어졌고, 문종대(1047~1083)에도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으며 의상대사의 덕을 흠모한 대각국사가 화엄사에 주석했던 때도 바로 이 때였다. 그후 화엄사는 인종(1126~1146)때 정인왕사(定仁王師)에 의해 중수되었고 명종2년(1172)에는 도선국사비가 건립되었고 충렬왕(1313~1330)때 원소암(圓炤庵)이 중건되었다. 조선초인 세종 6년(1462)에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병화로 8가람 81암자의 모든 당우와 보물들이 일시에 불타버렸고 인조 8년(1699)에 벽암선사와 그 문도들에 의해 복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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