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본론
1. 패션을 변화시킨 샤넬
1.1 소재의 변화
1.2 디자인의 변화
1.3 ‘샤넬 N°5’의 등장
2. 유행을 선도했던 샤넬
3. 시대의 흐름을 읽었던 샤넬
4. 여성을 옷으로부터 해방시킨 샤넬
4.1 샤넬의 모자
4.2 샤넬의 핸드백 줄
4.3 샤넬 라인의 치마
5.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준 샤넬
Ⅲ. 결론
1920년에 고급 의상실과 향수 가게를 겸하는 것이 새로운 생각은 아니었다. 폴 푸아레는 1911년에 이미 ‘루크레티우스 보르지아’나 ‘늬 드 신’이란 이름의 향수들을 상품화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 향수들은 그때까지 여성들이 사용하던 모든 향수와 마찬가지로 식물-장미, 은방울꽃, 재스민 등-이나 동물-사향노루, 향유고래, 사향고양이-에서 채취한 천연향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합성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우비강에서 제조한 ‘푸제르 우아얄’ 향수에는 쿠마린이 사용되거나 게를랭에서 제조한 ‘지키’에는 바닐린이 사용되고 있었다.
에르네스트 보가 당시에 연구하고 있던 것은 자극성이 강한 냄새가 나지만 휘발성이어서 돈이 많이 드는 합성물인 알데히드였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결점을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고 그의 뜻은 가브리엘과 맞았다. 그는 24가지 종류의 성분에 재스민 향료와 다량의 알데히드를 혼합하여 1번에서 5번까지, 그리고 20번에서 24번까지 번호를 매긴 두 종류의 향수 견본을 만들었다.
가브리엘은 그의 연구를 전적으로 지지해주었다. 비록 전문 지식은 없어고 그녀는 모든 분야에서 최고를 알아보는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1921년 5월 5일에 5번 향수를 먼저 선보였다. 그것은 이미 알려진 꽃들의 향기와는 전혀 다른 향수였다. 무에서 나온 것 같은 순수한 창작물이고, 그 근원이 불가사의했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혁신적인 향수였다.
향수를 담은 유리병의 모양 또한 혁신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리 제조업자들은 유리병의 윗면을 날아오르는 무희 또는 화살집을 가진 큐피드로 장식하는가 하면 유리병의 내벽에 조각을 해서 다양한 모양의 유리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향수병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였다.
반면에 단순함과 정확함을 좋아하는 가브리엘은 평행육면체의 단순한 유리병을 주문하면서 병 속에 담긴 금빛 액체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가브리엘이 당시 유행하던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향수 용기는 그녀의 의상들 만큼이나 아주 실용적이었다. 실용 정신을 가진 가브리엘은 용기보다도 내용물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미 유명해진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가장 단순한 이름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생각을 반영한 ‘샤넬N°5’’라는 향수의 이름 또한 그녀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부분이다.
2. 유행을 선도했던 샤넬
‘코코 샤넬’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여성들을 사로잡아버린 그녀는 새로운 유행을 이끄는 존재가 되었다. 패션에 관해서는 물론이고 그녀가 선택하는 것들은 패션의 일부분으로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가 좋아하는 색마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가졌다. 빨강, 파랑, 초록, 노랑 등의 원색이 유행하는 분야에서도 그녀가 선호하는 색은 검정과 짙은 색이었다. 그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색의 자동차를 선호하고 심지어 뒷자리에 레이스 장식을 할 정도로 화려함을 추구했지만, 그녀는 검정색 가죽으로 심플하게 내부를 치장한 군청색 롤스로이스를 주문했고 그렇게 해서 가브리엘은 까만 자동차를 유행시켰다. 몇 년 전 그녀가 고급 의상을 선보일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그녀가 선택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멋의 상징이 되었다.
샤넬이 자신의 패션에는 짧은 머리가 어울린다고 말한 뒤로 프랑스 전역의 미장원들이 호황을 맞았다. 미용사들의 가위질에 잘려나간 탐스럽고 아름다운 머리칼들이 미장원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졌다. 남편들과 연인들은 머리 자르는 것을 결사 반대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년의 작업실이 있는 캉봉 거리 31번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5번지에 미장원을 열고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창조하던 미용사 앙투안은 대번에 유명해졌다. 한 연대기 작가는 이 새로운 헤어스타일에 ‘쿠프-투주르’라는 특이한 이름을 붙였다.
이 헤어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새로운 모자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여자들의 머리를 작아 보이게 하는 ‘남자형 커트’는, 꼭대기가 원통형이고 작은 챙이 눈 위까지 내려와 눈썹 부위까지 푹 눌러쓰는 종 모양의 모자를 수월하게 쓸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색다른 모자들 또한 선풍을 일으켰다. 사람들의 반대도 있었고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종 모양의 모자와 새로운 헤어스타일의 유행은 외딴 시골에까지 퍼졌다.
3. 시대의 흐름을 읽었던 샤넬
1916년 부터 유럽에서는 이미 자자했던 샤넬의 명성이 미국에도 알려졌다. 1915년에는 《하퍼스 바자》에 이런 글이 실렸다. “샤넬 의상을 최소한 한 벌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유행에 뒤져 있는 여성이다.” 1917년에는 가브리엘의 고객들 중 대다수가 그녀를 ‘저지의 여왕’으로 인정하는 미국 여성들로 이루어 졌고, 플로리다 팜 비치에서 《보그》4월호는 샤넬이 만든 저지 드레스들을 소개했다. 한편《하퍼스 바자》는 이렇게 선언했다. “이 계정, 옷을 사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온통 가브리엘 샤넬이란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사업적 감각이 뛰어난 샤넬은, 최근에 연합군측에 가담했으면서도 전쟁에 소극적으로 관여하는 미국에 보낼 의상들은 파리 여성들을 위해 썼던 검정이나, 베이지, 짙은 회색 대신에 적자색, 초록색 등의 강렬한 색상을 사용했다.
1917년에서 1920년까지 그녀는 엉덩이 부분을 낙낙하게 만들려고 옆선에 주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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