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생애
1)
성장배경
2)
리더로서의 성장과정
2.
당선당시 시대상황
1)
당선당시 시대상황
2)
국민의 선택
3)
건국 초기의 시련과 과제
3.
대통령 리더십
1)
리더십이란?
2)
의사소통능력
3)
행정관리능력
4)
통치능력
5)
자기관리능력
4.
참 고 문 헌
이승만은 40대 중반이 되자 임시정부 수반으로 급부상했다. 1919년(45세) 3월 연해주 노령(블라디보스토크) 임시정부 국무총리로 추대되더니, 4월에는 상해(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와 한성 임시정부 집정관 총재(대통령)를 맡았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 무렵 그는 임시정부 대표 자격으로 국제회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독립을 호소했고, 그때마다 뛰어난 언변으로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그러나 이승만은 우월 콤플렉스가 너무 심했다. 그 결과 자연히 적이 많아졌다. 결국 1925년 임시정부 대통령직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임시정부 의정원이 불신임안을 가결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이처럼 그는 탄핵을 개의치 않는 타고난 투사였다.
단독정부 수립을 밀어붙이다
해방(1945)에서 독립(1948)에 이르는 미군정 3년은 좌우가 격돌하는 혼란기였다. 격돌의 표적은 국가건설이었다. 남북한 통일정부냐 남한만의 단독정부냐, 누가 최고 권력자가 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과는 남북이 갈라서는 것이었고, 남한에는 이승만 정권이, 북한에는 김일성 정권이 들어섰다. 그렇다면 이승만은 어떻게 해방공간의 아노미정국을 뚫고 최고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는가.
이승만은 젊은 시절부터 주로 외국에서 활동했다. 그래서 국내기반이 약했다. 이것이 정치적 약점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정치의 기상변화에 민감했던 이승만은 당시 한반도에 일고 있는 미․소간 냉전기류를 간파하고 미국을 후원자로 이용했다. 따라서 그는 반공친미 노선을 철저히 고수했다. 무엇보다 좌익(인공)의 주석 추대를 거부하고,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한 것은 미국의 환심을 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승만과 제 1공화국, 서중석, 역사비평사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유영익, 연세대 출판부
이승만 - 신화에 가린인물, 로버트 올리버, 건국대 출판부
대통령과 리더십, 김호진, 청림출판
대통령리더십총론 , 최진, 법문사
대통령리더십, 최진, 법문사
대통령과 국가경영, 김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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