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의이해] 유일한의 리더십
‘유일한’의 생애
※ 유일한의 리더십
정직의 리더십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혁신가
유일한이 태어나서 자라난 때는 서구 열강이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던 시기였고, 일본의 세력이 점점 커짐에 따라 조선은 일본의 통치권 아래 들어가는 암흑과 같은 시대였다.
그는 9세의 어린나이에 대한제국의 순회 공사인 박장연을 따라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박장연은 독립운동가 박용만의 삼촌으로, 유일한은 자연히 조선의 현실과 독립운동의 필요성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
그는 미시간대학 시절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주변에 중국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사실에 착안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물품 위주의 장사를 시작했는데, 그들이 좋아하는 만두 속에 들어가는 숙주나물이 공급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숙주나물은 보관하는게 까다로워서 금방 시들어 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숙주나물을 통조림으로 만들어서 판매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크게 성공하여서 ‘라초이 식품회사’를 설립하고 20대의 나이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유일한은 숙주나물 생산에 쓸 녹두를 구하러 고국에 돌아왔는데,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의 에비스 원장을 만나고, 그의 영향을 받아서 승승장구하던 숙주나물 회사를 정리하고 귀국하게 된다. 그는 비참한 일제치하고국의 실정을 보고 교수직을 맡기로 했던 계획을 바꿔 민족에 봉사하기 위한 기업경영을 하기로 마음먹고 조선에서 유한양행을 창립한다.
유한양행을 창설한 후에 회장으로 바쁘게 살아야 할 그는 1942년 미국으로 건너가서 항일 무장 독립군인 ‘맹호군’을 창설하고, 1945년에는 CIA의 전신인 미육군전략처인 OSS의 한국담당 고문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OSS는 유일한이 수집하고 분석한 정보를 토대로 특수부대를 설립하였고, 유일한도 OSS 지하 항일계획인 냅코작전 특수공작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때 중국에 있던 임시정부의 광복군과 미국의 한인특수부대가 합류하여 국내로 침투해 한국인 스스로 독립을 쟁취할 계획을 세웠지만, 같은 해 8월 15일 일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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