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8여단 복무 시기
•88여단의 창립배경
•88여단의 구성과 김일성의 위상
3. 소련 군정 시기
•김일성을 지원한 소련군 제25군단
•김일성 신화와 향후 전개될 숙청의 상관관계
3. 6.25 전쟁 시기
•오판
•책임의 전가
4. 전후 숙청 시기
•후루시쵸프의 등장이 소련파 숙청의 배경
•다른 사람의 손으로 게를 구워 먹는다
•연기의 달인
북한 건국 후, 88여단에서 김일성과 함께 했던 만주파 구성원은 대부분이 김일성 정권의 핵심인물로 활약한다. 그러나 88여단 출신 소련파는 나중에 숙청되어 반강제로 소련으로 돌아가게 된다. 유성철은 88여단에서 김일성과 함께 복무한 고려인은 12명이며 이 중 숙청당하지 않은 사람은 김봉률(전 인민무력부 부부장) 1인이었다고 한다(유성철 1992, 42).
고려인 이야기에 나오는 김창국, 리동화, 박창옥, 유성철도 혹독한 사상검토를 견디고 소련으로 귀환하며 김동수는 스스로 위험을 감지하고 자진 귀환한다. 이와 관련해 송원식은 김일성의 과거를 잘 아는 사람들은 다 숙청되었다고 하는데 88여단 출신 소련파의 숙청도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고,473).
유성철은 만주 산악지대에서 무수히 많은 사선을 넘으면서 함께 싸웠던 빨치산 출신들은 그들만의 끈끈한 정과 동지의식으로 뭉쳐있던 반면, 88여단 내 고려인들은 덤덤한 감정으로 김일성을 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유성철 1991, 41). 88여단에서 군의소장이던 리동화가 한국어에 능통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판받고 1960년 소련으로 돌아가는 정황을 보면, 88여단 내 만주파와 고려인 간의 문화적ㆍ정서적 괴리감이 존재했고, 이것이 끝까지 좁혀지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전자는 김일성의 과거를 안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3. 소련 군정 시기
•김일성을 지원한 소련군 제25군단
유성철은 고려인 이야기에서 소련군이 차세대 북한 지도자로 조만식, 박헌영, 김일성 중 1인을 선택하고자 했다고 증언한다. 조만식은 소련군과의 협조를 거부해 초반 탈락했고, 박헌영은 서울 주재 소련영사 삽신이 추천하고 있었다. 삽신 개인의 입장이라기보다 소련 외무성의 입장일 수 있다. 그리고 제25군단이 김일성을 밀고 있었다(고, 516). 유성철은 25군단의 많은 장교들이 김일성을 지지했다고 하는데, 박명림이 그의 연구에서 밝히는 바, 김일성은 88여단 시절부터 그 직속상부인 소련 극동방면군 사령부 정찰국장 조르킨과 교분이 두터웠고, 전 KGB요원 올레그 고다예프스키는 김일성이 NKVD(KGB의 전신)의 요원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박명림 1997, 225). 장학봉은 “김일성이 수령으로 정부책임자가 된 것은 아무런 유래없이 소련 제25군단장이 스탈린의 승
와다 하루키. 1992.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서울: 창작과 비평사
유성철. 1992. 증언, 김일성을 말한다. 서울: 한국일보사
장학봉 외. 2006. 북조선을 만든 고려인 이야기. 서울: 경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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