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버리지 위원회
2. 베버리지 보고서의 발간
3. 베버리지 보고서의 주요내용
4. 베버리지 보고서의 이념
5. 베버리지 보고서에 대한 각 입장
"전쟁의 가장 암울한 시기였던 1942년 말에 발표된 베버리지 보고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과 같았다" (2차 세계대전 후 영국 사회개혁의 산파였던 노동장관 그리피스의 말)
- 2차 세계대전 직후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애틀리(Clement Attlee)가 이끈 노동당이 윈스턴처칠의 보수당을 누르고 집권에 성공 (애틀리는 웹부부의 비서였고 토인비홀에서 자원봉사했었고, 런던정경대 강사였다)
- 애틀리와 노동당은 베버리지 보고서에 입각하여 복지국가를 만들어 감
- 영국인들에게 베버리지 보고서는 복지국가와 동의어로 인식됨
-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보장 실시
- 영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 유럽 복지국가 기틀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침
1. 베버리지 위원회
- 사회보험과 관련서비스에 관한 위원회, 즉 베버리지 위원회는 노동조합회의(TUC)가 노동당 소속 장관 그린우드(A. Greenwood)에게 권고하여 만들어짐 (노동조합회의는 기존의 국민보험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정부 각 부처 고위 관료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조직할 것을 요구)
- 노동조합회의는 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영국 국민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전후 국가재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판단
- 베버리지 위원회는 1941년 6월 창설. 위원회는 베버리지가 의장으로 천거되고, 2년 후에 그토록 엄청난 관심을 끌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결과보고서를 제출함
- 베버리지 위원회는 ①이미 폐지된 왕립노동자보상위원회의 업무를 계승하고, ②전쟁 이전에 제대로 되지 못한 의료보험 정비작업을 마무리하며, ③전쟁이 터진 직후부터 거세진 가족수당 요구를 대장성이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진 측면이 있었음
- 대장성은 베버리지 위원회의 활동을 비밀로 하고, 보고서도 전쟁 후에 발간되기를 희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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