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본론
1. 간도와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이 나타나는 시대·사회적 배경
(1) 국내적 배경
(2) 국외적 배경
2. 1910년대 간도,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의 전개
(1) 애국계몽운동
① 간도 지역의 애국계몽운동
(가) 경학사(耕學社)
(나) 부민단(扶民團)
(다)신흥강습소
(라) 애국계몽운동의 모태- 瑞甸書塾(서전서숙)
② 연해주 지역의 애국계몽운동
(가) 연해주 신한촌의 항일독립운동
(2) 항일무장투쟁
① 간도 지역의 항일무장투쟁
(가) 중광단 → 북로군정서군
(나) 해도회
② 연해주 지역의 항일무장 투쟁
(가) 성명회와
(나) 이범윤과 이르쿠츠크
(다) 크라스키노(연추) 창의소
3. 간도참변을 통해 살펴본 독립운동의 변화 양상
(1) 간도참변의 원인
(가)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
(나) 1920년 10월 초 훈춘사건
(다) 1920년 10월 11일~21일 청산리 대첩
(2) 간도참변 ( 경신년 대토벌)
(3) 간도참변의 결과
Ⅲ. 결론
(1) 국내적 배경
1910년대 간도, 연해주 지역에서의 한국독립운동은 일제의 침략에 대응한 한말국권회복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일제 침략이 가시화되던 1894년 의병전쟁의 태동과 동학농민전쟁의 2차 봉기는 그 한국독립운동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1910년대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은 대한제국의 멸망이라는 새로운 현실적 조건 위에서 모색되고 있었다. 한말의 의병전쟁은 국내를 무대로 전개되다가, 일제의 노골적인 침략과 압박에 직면하면서1910년을 전후하여 근거지를 만주 및 연해주로 옮겨나갔다. 계몽운동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 등 일제의 노골적인 침략에 직면하면서 좌우로 분화되었고, 신민회를 중심으로 한 계몽주의 좌파 인사들은 해외 독립군기지 개척을 추진해 갔다. 이 무렵 연해주에 건설된 13도의군, 권업회, 서간도에 세워진 경학사와 부민단, 북간도의 간민회 등은 해외 독립군기지 개척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일제는 의병전쟁과 같은 한국인들의 저항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식민지로 만든 결과 헌병에 의해 전 국토를 감시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억압적인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때문에 흔히 1910년대의 식민통치를 '무단통치'로 부르기도 한다.
이 시기는 특히 조선총독부를 움직이는 총독 이하 대부분의 주체들이 일본의 육군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 폭력성과 야만성이 더욱 강하게 나타났던 시기였다. 또한 만주로 진출하여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적인 거점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내의 안정, 특히 민족적 저항을 억압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던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근대적인 문물제도를 도입할 뿐이라고 선전하였지만, 실제적으로는 1910년 집회단속에 관한 법을 제정하고, 신문지법, 출판법을 확대 적용하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거의 모든 단체를 해산시키고, 신문과 잡지 등 출판물을 강제로 폐간시켰으며 대신 매일신보, 서울프레스, 경성일보와 같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역할을 하는 어용신문을 새로 발간하는 등.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 한국인들의 기본권을 완전히 부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교육을 통해 일제 식민지 통치의 근본을 이루고 있었던 동화정책을 관철시키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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