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젊은이들을 위하여 시인들의 열정이 폭탄처럼 폭발하고, 호숫가를 걷고, 몇 주 동안 완전한 친교를 나눈다. 내일은 여름날 저녁에 교외를 통과하는 자전거 경주를 한다. 하지만 오늘은 투쟁........
위스턴 휴 오든, “스페인”, 1937년
Ⅰ
여론조사는 1930년대 미국의 산물이다. 왜냐하면 시장조사자의 ‘표본조사’가 정치분야로 확대된 것은 기본적으로 1936년에 조지갤럽의 조사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의 초기 결과들 중 하나는 프랭클린 루수벨트 이전의 모든 미국 대통령들을 놀라게 했을 것인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성장한 모든 독자들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이었다. 미국인들은, 소련과 독일 사이에 전쟁이 터진다면 누가 이기기를 원하느냐는 1939년 1월의 질문에 83%가 소련의 승리를, 17%가 독일의 승리를 택했던 것이다. 소련이 대표하는, 10월혁명의 반자본주의적 공산주의와, 미국이 그 투사이자 주된 모범인 반공주의적 자본주의의 대립이 지배했던 세기에, 이렇듯 그 경제가 뚜렷이 자본주의적이고 반공주의성향이 강한 나라보다 세계혁명의 고향에 대해서 더 큰 공감이나 적어도 선호를 표명했다는 사실만큼 기이하게 보이는 것도 없을 것이다. 당시는 소련에서 스탈린주의 독재가 가장 심할 때였다고 일반적으로 합의되고 있으므로, 이는 더더욱 기이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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