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근대사] 영국의 시민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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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근대사] 영국의 시민계급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시민계급의 개념

Ⅱ. 영국 중산계급의 형성
1. 중산계급이란 용어의 선택
2.중산계급의 개념과 구성
3. 중산계급의 신화와 혼란
4. 중산계급의 형성

Ⅲ. 19C 후반 영국의 중간계급과 자유당
1. 선거법 개혁과 정당정치
1) 선거법 개혁
2) 정당정치
2. 글래드스전과 자유당 정치
1) 글래드스턴의 개혁 정치
2) 아이어랜드 자치 법안
3. 글래드스턴 정치의 성격
본문내용
Ⅰ. 시민계급의 개념
봉건사회의 신분제도에서는 계급(class)이란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계급이란 용어는 신분 질서가 사실상 무너지고 새로 나타나고 있던 새 사회의 신분을 낡은 사회 신분과 구별할 필요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8C에는 세 신분으로 구성된 봉건적 신분제도가 그대로 존속하고 있었으나 각 신분 안에서 재산, 생활 양식 및 직업의 변동이 크게 일어나면서 각 신분 자체에 분절이 생겼다. 18C의 이러한 분절은 각 신분의 경제적․사회적 기능의 변화를 의미했다. 즉 제 2신분은 기사(騎士)계급이라는 군사적․사회적 기능과는 상관 없이 상공업에 종사하여 경제적 기능을 새로 수행하고 있었고, 부유한 제 3신분은 봉건적 영주권을 사서 스스로 귀족이 되거나, 귀족 신분이 되지 않더라도 귀족적인 사회적 의무를 부담했다. 18C의 사회적 변동기에 새로 출현하고 있는 계급을 적절히 표현해야 할 필요를 충족시켜 준 것이 ‘중산계급(middle class)’이나 ‘시민계급(bourgeoisie)’이라는 단어였다.
이러한 계급이 성장해 갈수록 제 3신분의 실체가 모호해지고 그 실질적 의미가 사라져 가고 있었는데 그럴수록 “부르주아”라는 말은 제 3신분 안에서 그 독자적인 위치를 보여주는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갔다. 처음 부르주아라는 말은 ‘도시의 부유한 동업조합원’이란 의미를 가진 집단에 대한 지칭이었으나, 18C 후반에 이르면 자기들만의 특유한 어떤 기준과 규범에 의해 생활하는 다양한 사회집단들을 포함하는 느슨한 개념이 되었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부르주아의 개념에는 광범하고 다양한 직업과 수입원이 포함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세금, 교육, 생활 방식, 주관적 자아상, 사회적 관계와 가문 간의 관계 등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경제적 및 문화적인 요소들이 복잡하게 엉켜있는 막연한 개념의 ‘부르주아’라는 말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든 것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었다. 부르주아라는 말은 이제 정치적 슬로건이 되어 정치적 차원의 의미까지 첨가되게 된 것이었다.
19C 중엽 경제적 산업화와 사회적 변동이 야기한 사상 초유의 빈부 격차에 놀란 사회주의자들과 사회 개혁가들은 경제적 기준에 의해 사회를 비판하고 그 경제적 기준은 도덕적 분노의 도구로써 정교하게 다듬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그 중 주목할만한 것은 마르크스의 아이디어이다. 그는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계급적 적대라는 것을 포괄적으로 분석하여 부르주아 계급에 의한 노동자 계급의 착취에서 계급의 기반을 발견하고 계급을 개인과 생산 수단과의 관계로 정의하였다. 그리고 19C 프랑스 농민은 계급 투쟁의 정치적 주체 의식이 없기 때문에 계급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에는 이제 경제적 요인에다 계급 투쟁이라는 정치적 요인 및 계급 의식이라는 정신적 요인이 첨가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근세 유럽의 경제․사회 및 정치의 모든 국면의 변화를 통일적 체계에서 설명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그의 설명은 학문적 이론인 동시에 혁명 이론이 되어 그를 추종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경제적 요인을 계급의 유일한 결정적 요인으로 여겨 마르크스주의냐 반(反)마르크스주의냐의 두 범주로 갈라서게 만들었다. 또한 마르크스는 19C의 유럽 사회를 고도로 발전한 산업 사회로 보고 있었으나 오늘의 역사가들 중에는 산업이 발달한 19C 유럽에서 정치적 계급 투쟁의 중심 무대가 기업에 종사하는 산업자본가 계급이었다는 그의 주장에 반박한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19C 유럽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