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제4장 자유주의의 몰락

 1  [서양사] 제4장 자유주의의 몰락-1
 2  [서양사] 제4장 자유주의의 몰락-2
 3  [서양사] 제4장 자유주의의 몰락-3
 4  [서양사] 제4장 자유주의의 몰락-4
 5  [서양사] 제4장 자유주의의 몰락-5
 6  [서양사] 제4장 자유주의의 몰락-6
 7  [서양사] 제4장 자유주의의 몰락-7
 8  [서양사] 제4장 자유주의의 몰락-8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서양사] 제4장 자유주의의 몰락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Ⅰ.
 19세기부터 살아온 생존자라면, 파국의 시대에 이루어진 모든 사태전개 중에서, 아마도 자유주의 문명의 가치관과 제도가 붕괴한 것에 대해 가장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의 세기는 자유주의 문명이 계속 발전할 것임을 당연시했던 것이다. 자유주의 문명의 가치관이란 독재와 절대주의적 통치에 대한 불신과, 자유롭게 선출된 정부 및 의회를 가지거나 그러한 기구가 이끄는 입헌통치에 대한헌신과, 연설, 출판, 집회의 자유를 비롯한 시민들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인정이었다.

 사실상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제도들은 확산되었으며, 1914 ~18년의 야만성의 폭발도 이러한 확산을 촉진했을 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소련을 제외한 모든 체제가 기본적으로 선거를 통하여 구성된 대의제적 의회주의체제 (터키까지도)가 되었다. 선거를 통해서 구성된 대의제체제는 꽤 많았으나, 무솔리니의 이른바 '로마진군'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의 성공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 사이의 20년 동안에 자유주의 정치제도가 갈수록 빨리, 갈수록 파국적으로 후퇴했다. 요컨대 온전히 민주주의적인 정치제도가 전간기 내내 쉬지 않고 기능했던 유럽 국가는 영국, 핀란드, 아일랜드 자유국, 스웨덴, 스위스뿐이었으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캐나다,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미국 그리고 남미의 스위스인 우루과이가 전부였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사이의 움직임이 때때로 우경화뿐만 아니라 좌경화도 보였다는 것이다. 지구상의 나머지 지역, 즉 그 상당수가 식민지들로 구성되었고 따라서 당연히 비자유주의적이었던 지역으로 말하자면, 명백히 자유주의적 정체로부터 멀어졌다. 요컨대 정치적 자유주의는 파국의 시대 내내 전면적으로 후퇴했고, 그러한 후퇴는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에 독일의 수상이 된 수에 급격히 가속화되었다.
1945년과 1989년 사이에는 자유주의 제도들에 대한 위험이 본질적으로 공산주의로부터 나왔다는 것이 거의 당연한 일로 생각되었으므로, 파국의 시대에 그러한 위협이 정치적 우파로부터만 나왔다는 점은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1930년대에 파시즘은 미래의 물결로 보였던 것이다. 그 분야의 한 전문가가 말했듯이 "동유럽의 독재자 국왕들, 관료들, 장교들 그리고 프랑코가 파시즘을 흉내내야 했다는 것은.......우연한 일이 아니다. "(Linz,1975)
자유민주주의체제들을 뒤엎은 세력은 (전통적인 쿠데타를 제외) 모두가 권위주의적이었고ㅡ 자유주의 정치제도들에 대해서 적대적이었다. 또 모두 군대를 선호하고, 경찰이나 그밖의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구들을 육성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민족주의적인 경향이 있었다.
 구식의 권위주의자들이나 보수주의자들은 반공주의와 그들 계급에게 전통적으로 존재하는 편견 말고는 어떠한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의제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히틀러 독일이나 자국의 파시스트 운동들과 동맹을 맺기도 했으나, 이는 단지, 전간기 상황에서 모든 부문의 정치적 우파의 동맹이 '자연스러운' 동맹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민족적 고려가 이러한 동맹을 방해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 그러한 구식 반동주의자들이 그들 자신의 나라에서 진정으로 파시스트적인 운동측의 반대에 직면해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우파의 두번째 가닥은 "유기적 국가주의"라고 불리는 것을 낳았다. 그것은 전통적 질서를 수호하기 보다는 그러한 질서의 원칙을 의식적으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도전과 노동자 및 사회주의의 도전 양쪽 모두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개조하는 보수주의체제였고, 그 이면에는 상상속의 중세나 봉건사회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향수가 깔려 있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경제적, 직업적 이익집단들의 대표체로 대체하는, 다양한 종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