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다다이즘과 마르셀 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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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이즘


다다(Dada)는 세계 제1차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6년경에 시작되었다. 오늘날에야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 하면 인류의 종말을 생각하게 되지만, 1차대전이 발발할 당시 많은 유럽의 지식인들은 전쟁을 통한 일종의 세계정화 혹은 정의구현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전쟁은 그들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1차대전이후 유럽인들 사이에는 전쟁에 대한 회의감이 팽배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향을 강하게 가진 미술가들이 1916년 2월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시작한 모임에서 다다라고 하는 반항기 강한 미술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들의 세상에 대한 반항심은 곧 전쟁을 낳은 서구 전통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다다는 비단 미술가들만의 운동은 아니었다. 취리히 다다가 시작된 것은 후고 발이라는 극작가의 "카바레 볼테르"에서 였다. 이 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에미 헤밍스라는 배우, 트리스탄 짜라라는 시인, 리하르트 휄젠벡이라는 작가도 있었고, 물론 쟝 아르프, 마르셀 장코 같은 미술가들도 있었다. 이들은 거의 매일 밤 이곳에 모여 일종의 공연을 했는데, 에릭 사티와 쇤베르크의 현대음악과 거의 소음이나 다름없는 잡음으로된(bruitist) 음악을 연주했고, 아프리카 부족의 시, 단어를 우연적인 순서로 나열한 시, 그리고 의미없는 음으로 이루어진 음성시(sound poetry)를 낭송하거나, 둘 이상의 시를 동시에 낭송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부조리한 행위들을 통해 그들은 기존의 미술에 대해 공격하였다.




다다라는 명칭은 아주 우연히 지어졌다. 다다는 루마니아어로 목마를 의미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별 의미없이 지껼이는 음성어 이기도 하다. 아직 말을 제대로 못하는 어린 아이가 "다다...다다..."하는 것 말이다. 한마디로 별 뜻도 없는 말인데, 다다이스트들은 이 무의미한 음성어가 자신들의 작업과 목표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여 이것을 자신들의 명칭으로 삼는다. 사실상 다다이즘은 미래파나 큐비즘, 야수파처럼 하나의 양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하나의 태도를 가리킨다. 즉 미술이란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기존의 관념에 대한 도전 의식이다.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수는 방법은 각각의 미술가들에게 다르게 나타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부정성, 즉 모든 가치에 대한 무정부주의적 부정 행위에서 찾아진다. 그들은 현존하는 모든 예술 형식에 대한 파괴를 감행하였고, 저항을 위한 저항을 감행하였다. 한마디로 다다의 정신은 반대(anti)로 특징 지울 수 있는데, 그들은 반종교, 반도덕, 반자연, 그리고 반예술에까지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