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정전협정의 체결과 전쟁의 유산
정전회담이 실질적으로 진전되기 시작한 53년 4월부터 이대통령은 정전 반대 움직임을 활발히 전개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전 조건은 중공군의 철수, 북한군의 무장해제, 한미방위조약의 조인 등이었다. 이에 대해서 처음에 아이젠하워는 거부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미국의 이승만 정권의 쿠데타 방안을 논의했다. 한편 정전회담이 재개된 첫날 공산 측 대표 남일은 6개항을 제안했다. 4월 30일 이대통령은 클라크에게 서한을 보내 새로운 조건 6가지를 내놓았다. 이러한 주장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한편 5월 7일 남일은 8개 항목을 새롭게 제안해서 내놓았지만, 미국이 거절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의 제안으로 기초로 해서 다시 다른 안을 제안하였지만 중조 측이 받아들일 수 없었고, 5월 25일 미국은 새로운 제안을 하고 이 제안은 미국 측의 양보로서 중국 측으로서는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다. 반대로 이승만 정부에는 최악의 사태가 온 것이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