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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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16)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대하여

2. 중․미 전쟁의 체제와 전개

3. 정전회담의 개시
본문내용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관하여
북한군의 남진 속에서 중국에서는 한국전쟁 참전 여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마오저뚱은 미군의 해․공군력 및 원자폭탄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참전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 국가가 안정화 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많은 병력의 한국전쟁 투입 시 국민당 정부 세력의 부활 및 도발을 걱정하고 있었다. 실제로 중국의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원자폭탄을 두려워했으며, 미군의 공군력 역시 매우 두려워하였다. 중국이 참전하기 위해서는 소련의 공군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오저뚱을 비롯한 참전을 주장하는 세력들은 미군이 직접 압록강 근처까지 세력을 넓힌다면 중국의 본토는 사상적, 군사적으로 더욱 위협을 받을 것이라 판단한다. 한편 소련의 스탈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및 UN군의 북진에 대하여 군사고문을 비판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소련은 전쟁개입에 대한 거부감으로, 처음엔 중국의 공군지원에 대하여 선뜻 응하지 않았다. 대신 무기지원에 대해서는 찬성하였다. 이후 중국이 마오저뚱의 강력한 주장 하에 단독으로 10월 8일에 중국인민지원군을 결성. 10월 19일 중공군은 전쟁에 한반도로의 참전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중국의 결정은 스탈린을 자극시켰으며, 결국 소련의 공군력도 한국전쟁에 투입되었다. 단, 소련이 참전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중국 동북지역에서 진주. 중공군 비행복에 북한 마크를 단 기체를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