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본론
2-1 19c 말 흑인 민권 운동가
2-1-1 Booker T. Washington
2-1-2 W. E. B. Du Bois
2-2 20c 초 흑인 민권 운동가
2-2-1 Martin Luther King, Jr.
2-2-2 Malcolm X
2-2-3 두 인물 비교
3. 결론
두 사람의 사회적, 지적 성장에서 드러나는 상이함은 미국과 미국 안에서 벌어지는 자유를 향한 흑인들의 투쟁에 관한 각기 다른 시각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준다. 말콤과 마틴은 계급, 가족의 지원, 정치적 전통, 지리, 종교적 전통, 교육 등이 모두 달랐다. 이 모든 요소가 대조적인 기질과 개성을 가진 채 두 사람을 서로 다르게 만들었다.
마틴은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며 백인들의 세상에서 꽤 성공한 사람이었다. 바로 그 점으로 인해 그는 백인들에게 그토록 낙관적일 수 있었으며, 의미 있는 변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날 거라고 믿을 수 있었고, 결국 모든 사람을 위한 정의와 자유가 이룩되리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마틴은 그런 믿음을 조장한 결과 많은 상을 받았다. 반대로 말콤은 독학을 했고 백인들의 세상을 경멸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말콤은 도시의 빈민가에서 빽빽하게 모여 살며 실업, 싼 임금, 마약, 경찰의 만행에 맞서 일상적으로 싸우는 북부의 가난한 흑인들을 대변했다. 따라서 말콤은 마틴이 상징했던 흑인 전문직 계급의 낙관주의를 공유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백인들이 자신들의 사회에서 억압받는 흑인들과 특권이나 권력을 공유하려는 선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라는 관점을 지지해주는 흑인 민중의 경험은 전무 했다.
말콤 X와 마틴의 유년을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두 사람이 성장한 뒤 미국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 이유를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마틴의 부모는 “삶의 필수품”과 미국 내의 흑인으로 자라면서 모방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 모델을 포함해 자녀들에게 “딱 맞는 가정”을 마련해주었다. 또 백인의 인종차별주의라는 최악의 경험에서 아이들을 보호해주었다. 그 결과 마틴은 내면적인 강인함과 자신감을 발전시킬 수 있었고, 인종에 따라 분리된 사회 속에서 흑인이 갖는 약점을 극복할 수 있게끔 단련될 수 있었다.
말콤의 부모들은 백인 증오 집단의 폭력이나 인종차별이라는 세련되고 문명화된 폭력 앞에서 자기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었다. 말콤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여섯 살,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들어갔을 때는 고작 열두 살이었다. 자신의 개성을 긍정하고 다른 사람과 똑같은 자신감을 심어줄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한 채, 말콤은 재능과 인기가 있는 아이였지만, 인간으로서의 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백인 사회에 대항할 정서적 힘을 갖지 못했다.
마틴과 말콤의 가정환경뿐 아니라 어린 시절의 교회나 교육의 체험에서 드러나는 극명한 차이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틴이 흑인 교회와 학교를 다니면서 백인들과는 드물게 접촉하면서 백인 세계에서 흑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반면, 말콤이 다닌 교회나 학교는 주로 흑인과 백인이 함께 다니는 곳이었고, 따라서 백인에 의해 규정되었다. 말콤은 “나는 철저히 백인 사회에 통합된 삶을 살았다.”고 회상했다. 말콤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구성원이 대부분 백인인 제칠일예수재림교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말콤은 미시간 주에서 학교를 모두 세 군데 다녔다. 두 곳은 주로 백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고, 세 학교 모두 백인들이 관리하고 있었다. 학교나 소년원에서 마주친 백인들에 대해 말콤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자신이나 다른 흑인들을 검둥이, 깜치, 껌둥이, 라스투스 따위로 불렀다는 것이다. 말콤은 이러한 욕지거리들을 너무 자주 들어서 한 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이것들로 착각할 정도였다.
마틴이 백인들과 즐겁게 지낸 경험 때문에 백인들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반면, 말콤이 어린 시절 백인들과 나눈 긍정적인 경험들은 오히려 백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켰다. 이렇게 말콤이 백인들과 맞닥뜨린 긍정적인 기억들을 쉽게 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그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인종차별이 마틴이 경험한 것보다 훨씬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은 남부가 북부보다 인종차별이 더 심했다고 믿어온 사람들에게는 다소 이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마틴과 말콤, 두 사람이 각기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마주했던 인종차별의 종류는 차이가 컸다. 인종차별을 처음 의식하게 되었을 때 마틴은 이미 여섯 살이었다. 그리고 마틴이 겪은 최악의 경험은 버스 좌석을 백인에게 강제로 양보히고 통로에 선 채로 90마일을 가야 했던 일 뿐이었다.
정의에 대한 말콤의 생각은 마틴과는 달랐다. 마틴의 정의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명령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말콤의 정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팔에는 팔, 머리에는 머리, 목숨에는 목숨”이라는 개념에서 나온 것이었다.
중요한 점은 말콤의 관점에서의 신은 정의의 실행자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백인들은 우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능하신 알라 신에 의해 파멸할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정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러한 말콤의 주장은 정치적인 행동에 대한 소극적 태도를 가져왔다. 이러한 소극성은 마틴의 정치적 적극성과 첨예하게 대조된다. 킹은 말콤처럼 신이 궁극적인 정의의 실행자라고 믿었지만 신의 정의를 강조하면서 이 세상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소모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마틴은 백인도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마틴도 말콤 못지않게 백인의 잔인함을 비난했지만 그는 항상 화해의 문을 열어두었고 또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힘썼다. 마틴은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에서조차 흑인과 백인이 서로 도와가며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낙관했다. 마틴과 달리, 말콤은 백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그는 흑인의 관점에서 말했고, 그들의 적이 누군지 흑인들에게 알림으로써 존엄성을 위한 투쟁에서 싸워야 할 상대가 누구인지 깨닫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통합주의 사상의 흐름을 한마디로 정리해보자. 만약 자신들이 만든 정치적, 종교적인 문서들을 진심으로 신뢰한다면, 백인들은 흑인들이 노예가 되거나 차별을 받기는커녕 사회의 주류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http://blog.daum.net/myhistoryocean/11771134
http://en.wikipedia.org/wiki/W._E._B._Du_Bois
http://100.naver.com/100.nhn?docid=153720
http://navercast.naver.com/worldcelebrity/history/104
http://blog.daum.net/beacon/16155584
제임스 H. 콘 저, 정철수 역,《맬컴 엑스 Vs. 마틴 루터 킹》, 갑인공방, 2005.
http://news.nate.com/view/20080607n0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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