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피(血)와 기운(氣)이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 말, 돼지, 양, 벌레,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결같이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찌 큰놈만 죽기를 싫어하고, 작은 놈만 죽기를 좋아하겠습니까? ...... 당신의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십시오. 엄지손가락만이 아프고 그 나머지는 아프지 않습니까? 한 몸에 붙어 있는 큰 지절(支節)과 작은 부분이 골고루 피와 고기가 있으니, 그 아픔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각기 기운과 숨을 받은 자로서 어찌 저 놈은 죽음을 싫어하고 이놈은 좋아할 턱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물러가서 눈감고 고요히 생각해 보십시오 ......" http://100.naver.com/100.nhn?docid=88233 / 2009.12.05
이규보는 '슬견설'을 통해 생명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소중하다는 뜻을 남겼다. 이렇듯, 생명의 소중함은 예부터 중시되어왔다. 현대과학이 발전함과 동시에, 생명 존중 의식도 함께 발전해야함은 자명한 사실이나, 시간이 갈수록 그 기준과 의미가 모호해지고 있다. 인류의 편의를 위해 실시하는 생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 안락사, 낙태, 줄기세포 연구 등이 만연한 지금, 우리는 이러한 모순에 대해 지적하고, 생명과학도들이 가져야하는 윤리적 의식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생명과학과 관련된 윤리적 사회적 이슈에는 안락사, 낙태, 줄기세포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몇 가지 중 먼저 안락사를 소개해본다.
안락사는 자의적 안락사, 소극적 안락사 등 많은 종류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설명을 하면, 안락사는 오늘날 질병의 고통을 없애려는 어떤 의학적 조치를 의미한다. 안락사에 대해 찬성하는 쪽은 불치의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의 죽음은 불가피한 것이며, 이 환자를 위하여 고통을 진정시키는 진통제 사용 이외에 다른 어떤 치료 방법이 없는 경우에는 그 고통과 비참함을 빨리 종식시킬수록 좋다고 주장한다. 또 이 불치의 병을 치료하는데 그의 가족들에게 정신적,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주고 막대한 의료비용은 그 환자의 가정과 재산을 파탄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환자의 생명을 빨리 단축시키는 것은 자비로운 행위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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