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국론」의 저술은 410년 고트족을 이끈 알라릭(Alaric)이 로마를 약탈한 사건과 직·간접의 관계를 갖고 있다. 당시 로마는 제국 최고의 행정 수도는 아니었다. 80여 년 전(330년)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라릭의 약탈은 거의 정확하게 로마가 마지막 침탈을 당한 지 800년 후의 최초의 사건이었다. 더구나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긴 다음에는 로마를 교황도시로 보는 시각이 생겼다.
그럼에도 로마는 아직 곳곳에 이교적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특히 상류층에서는 이 같은 경향이 심하였다. 로마 종교는 그리스의 영향이 많아 주피터를 주신으로 숭배했고 상대적으로는 스토아주의와 에피큐리아니즘(Epicurianism)이 깊숙히 귀족들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알라릭의 로마 약탈은 전통적인 제신들을 무시하고 기독교를 옹호한 데서 발생했다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기독교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로마 쇠퇴의 이유에 대한 열띤 논쟁이 전개되었다. 이들간의 논쟁은 길고 다양한 것이었으나 요컨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독교 교리는 이 세상을 거부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이것이 국가에 대한 봉사를 소홀히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로마의 국가적 운명은 항상 다신(多神)들의 숭배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믿어왔는데, 기독교의 공인과 전파는 이교신(異敎神)들을 배반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이로 인해 로마 몰락의 징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북아프리카의 로마 관리이며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친구였던 마르켈리누스(Marcellinus)는 기독교 옹호에 대한 자신의 역부족을 느끼고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책을 쓰도록 요청했다(412년).
「신국론」에서 펼쳐진 내용의 구상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민음사, 이석우 저, 1995 ꡔ아우구스티누스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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