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별산대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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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양주별산대놀이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양주별산대놀이의 유래
2)양주별산대놀이의 내용분석
3)양주별산대놀이의 구조분석
3. 결론
본문내용
1. 양주별산대놀이의 유래
양주에서 처음 본산대를 초청해서 연희한 시기는 임란 직후인 1600년대 초로 알려져 있다. 연희자 김성대에 의하면, 양주에서 산대놀이가 시작되기는 임란직후인 1613년에 진어사(鎭禦使) 겸 목사인 유척기가 관민을 위로하기 위해 한양에서 본산대를 초청해, 매년 4월 8일, 5월 단오, 팔월 추석, 국경일, 기우제 등에 공연하였다고 한다 김성대가 1968년에 기록한 것을 토대로 하면, 시대에 약간 차이가 있지만, 양주의 탈놀이 공연은 임란 직후인 16세기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본격적인 양주별산대놀이의 연희는 서울 지역의 본산대를 받아들여 18~19세기 중엽에 현지에서 재현되었는데, 다만 그 중에서 어느 집단의 연희를 받아들였는가는 기록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서울의 본산대 중에서 애오개산대패, 사직골 딱딱이패, 구파발산대 중의 한 부류의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우선 애오개산대패의 영향설은 아끼바, 송석하, 최상수 등의 기록에 의하는 것이며, 사직골 딱딱이패 영향설은 이두현, 심우성, 현지인 등의 기록에 의한 것이다. 또 구파발산대패 영향에 대해 임석재는 “내가 조종순에게서 들은 바로는, 양주에서 구파발산대패를 초청하여 놀려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게 되자 양주의 본바닥 사람들이 스스로 탈을 만들고 춤을 추어 별산대를 놀게 되었다고 한다.”고 말하여 구파발산대패의 영향을 주장하였다.
참고문헌
< 참고문헌 & 자료 >
정형호,『양주별산대놀이』, 화산문화, 2000.
조동일,『한국가면극의 미학』, 한국일보사, 1975.
박진태,『탈놀이의 기원과 구조』, 새문사, 1990.
장한기,『증보 한국 연극사』, 동국대학교출판부, 2002.
http://www.yangjut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