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세사] 경군의 신분에 대한 연구사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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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중세사] 경군의 신분에 대한 연구사 검토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머리말
1. 경군京軍이란?
2. 경군京軍의 신분제에 대한 논의
⑴ 부병제설府兵制說
⑵ 군반제설軍班制說
⑶ 이원적구성론二元的構成論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고려사의 기사 중 농한기에는 반드시 제위 군사들을 훈련시켜야 한다는 구절이 있어 그 군사들이 농민임을 나타내고 있다. 부병제의 중요한 논거로써 남도지방에 보승군保勝軍과 정용군精勇軍이라는 이름의 군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고려사에는 경기 남방 5도 지역의 병역자원 일람이 기재되어 있다. 고려 정부는 이들 각 행정도를 다시 몇 개의 군사도로 구획한 다음 각 군사도별 병력자원을 보승군, 정용군, 일품군一品軍 등의 세 가지로 분류하여 각각의 병원수를 파악하였다. 중앙정부가 남도지방의 보승군과 정 용군의 현황을 직접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제위 소속의 보승군과 정용군이었을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한다. 정부에서는 중앙군에 번상 입역하는 농민들에게 제도적 보상장치를 마련했다. 양반관료계급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군인들에게도 토지를 지급하는 방식의 보수 제도를 마련해 놓은 것이 그것이다. 즉 목종 원년에 개정된 문무양반급군인전시과文武兩班及軍人田柴科 규정에 의하면 마군은 전田 23결을, 제보군은 전 20결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문무 관료들과 더불어 소정의 토지를 받도록 규정된 마군 ․ 제보군은 중앙 정부의 직속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 특정 부류의 군인들을 위해 제정된 전시과 제도상의 토지가 곧 군인전이었던 것이다.
부병제설에 따르면, 이 군인전은 정부에서 군인들에게 지급하는 토지가 아니라, 그들이 농민으로서 본래 소유하고 있던 농토에 대한 조세면제권을 지급해 주는 것이었다. 즉 “군인전을 형성하는 모체가 되는 토지는 원래 군인들이 농민으로서 소유해 오던 그들의 민전이며 면세를 조건으로 주로 이 민전 위해 군인전을 설정하여 지급이라는 의제적인 형식절차를 위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부병제설은 중앙군을 자영농민층에서 선발된 군사들로 구성된 것이라 파악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논리상 군인전을 자경면조지로 해석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학자로 강진철을 들 수 있는데 그는 부병제설의 가장 직접적인 근거로서『고려사』병지 서문을 들고 있다.

고려 태조가 삼한을 통일하여 처음으로 6위를 두니 위에는 38령이 있고, 영은 각각 천명으로 상하가 서로 매여 있고, 체통이 서로 이어지니 당의 부위제와 유사하였다.
(高麗史 권 81 병지 1 서문)

또한 강진철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고려도경』과 『송사』를 검토하였다.『고려도경』장위仗衛 조의 기록에 따라 ‘고려의 전체 병력은 약 60만 정도로 6군 상위上衛와 나머지군餘軍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왕성에 머물러 지키는 병사는 교대로 번을 나누어 지켰으며, 나머지군은 평소 농사를 짓다가 경고가 있으면 전투 혹은 노역에 동원되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송사』고려전에는 “6군 · 3위가 항상 관부에 머물렀는데 3년마다 뽑았고, 서북의 수자리하는 것은 반년마다 고쳤는데, 경고가 있으면 농무農畝에 복귀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어 이를 염두에 두고 본다면『고려도경』의 시위군侍衛軍이 3년마다 교대 근무하는 군대였음을 알 수 있다. 이때『고려도경』에서 보이는 나머지 군이란 지방의 주현군과 ‘촌에 머물러 있는 2·3품 군’을 합쳐서 말한 것으로 보았고 『송사』고려전에서 “경고가 있으면 무기를 잡고, 일이 있으면 노역에 복무했으며, 일이 끝나면 농무에 복귀하였다”는 비번의 경군 휴한병休閑兵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이들은『고려도경』에 나타나는 나머지 군이 될 수도 있고, 『송사』고려전에서 보았던 6군 3위가 될 수도 있다.
참고문헌
강진철, 1963, 「고려 초기의 군인전」, 『숙명여대론문집』3
이기백, 1968, 「고려 군반제 하의 군인」, 『고려병제사 연구』
장동익, 1986, 「고려전기의 선군」, 『고려사의 제문제』
홍원기, 1990, 「고려이군육위제의 성격」, 『한국사연구』68
정경현, 1993, 「중앙군의 인적구성에 관한 제설」, 『한국사』13
권영군, 2002, 「고려전기 중앙군의 성격」, 『한국 전근대사의 주요 쟁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