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천안문사건 개요
Ⅱ. 지도자들의 입장
▷덩샤오핑
덩샤오핑이 본 천안문사건의 원인과 입장
▷리펑[李鵬(이붕), 1928.10.20~]
천안문 사건과 그 중심에 선 리펑과 강경파
리펑에 대한 평가
▷자오쯔양[趙紫陽(조자양), 1919.10.17 ~ 2005.1.17]
자오쯔양(온건파)개혁과 천안문사건에 대한 입장
자오쯔양에 대한 평가
▷학생지도자들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의 원인
학생들의 요구사항
주요 인물
Ⅲ. 천안문 사건 이후 중국사회의 변화
1989년 4월 15일 전임 중국공산당 총서기 후야오방의 사망으로 촉발된 학생들의 추모행사가 중국전체로 확산, 약 100만 명의 학생, 지식인, 노동자 등이 참여하는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국민적 민주화 운동으로 발전-중국 사회주의 체제는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
-4월15일 후야오방 전총리 사망, 학생들의 추모행사 확산
-4월18일 북경대 학생들의 천안문 시위는 시민들의 참여로 10만여 명의 시위로 발전
-4월20일 중국공산당이 “학생들의 시위가 법률의 허용범위를 넘었다”고 경고
-4월22일 추도대회에 20여만 명의 학생, 시민참여
-자오쯔양(온건), 리펑(강경)의 의견이 엇갈리고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한 원로 지도부도 동요,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에 당과 국가의 초기 대응에 혼선(시위사태 장기화, 확대초래)
-자오쯔양 총서기 방북
-보수파 리펑총리가 덩샤오핑과 당 원로들의 경각심 자극
-학생운동을 ‘동란’으로 규정하는 4월26일『인민일보』사설「동란을 철저히 반대한다」발표
-4월27일 ‘자유와 민주쟁취’, ‘정경유착 반대’, ‘동란규정철회’와 당국과 학생간의 공개적이고 평등하고 성실한 대화 요구하는 대규모시위 전개
-4월30일 자오쯔양 귀국,‘민주와 법제의 틀 안에서 해결을 모색’방침 고수 위해 노력
-5월13일 시위대의 강경파가 주도하는 단식투쟁 시작
-5월17일 ‘민주와 자유’요구, 덩샤오핑과 당 원로등의 퇴진 요구,
단식투쟁에 대한 대중성 획득, 지식인들 참여로 시위고조
-덩샤오핑 자택에서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원로들의 합동 회의 개최, 계엄령 선포와 무력 진압 방침 최종 결정, 자오쯔양의 유화책 비판(강경론 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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