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송 설경동에 대하여
1.1. 출생과 성장과정
1.2. 해방 전 사업 내용
1.3. 해방 후 사업 내용
1.4. 정치적 시련
2. 창업 초창기
3. 대한전선 창업자의 가족관계
4. 2세들에 대한
분할 상속과 내용
5. 3세로의 상속과 상속세
6. 2세 상속자들에 대하여
6.1. 3남 설원량
6.2. 장남 설원식
6.3. 차남 설원철
6.4. 4남 설원봉
6.5. 2세들의 혼인관계
7. 대한전선그룹의 퇴조
8. 재기를 위한 노력
9. 3세 상속자에 대하여
“50년대 재계서열 4위의 대한산업그룹”
- 53년 대한방직, 55년 대한전선, 56년 대동제당을 세워 50년대 당시에 국내에 서 손꼽히는 재벌가로 올라섬.
1953년 방직공장을 인수하여 대한방직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당시 방직업은 정책적인 보호를 받고 있어 번창할 수 있었고 정계에도 진출하여 자유당 재정부장이 되었다. 1954년에는 대한전선을 불하받았으며, 1956년에는 대동제당(현 대한제당)을 설립하였다.
이후 4·19혁명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으로 타격을 받았다. 5·16군사정변 이후 정부의 기간산업 건설에 참여할 기회를 얻어 대한전선의 시설확충에 전력하였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텔레비전·냉장고 등 전자제품 생산과 이의 호경기에 힘입어 그의 기업체군은 대한재벌로 불리게 되었다. 당시 가전제품 시장에서는 금성사(현 LG전자)와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다. 70년대 ‘대한전선도시바TV’는 부의 상징이었고 각 가정마다 구매 1순위 가전제품이었다.
3. 대한전선 창업자의 가족관계
슬하에 4남2녀를 둔 고 설경동 대한전선 창업주는 아내가 두 명이었다.
첫 번째 부인, 고 이태하씨와 사이에 2남을 두었다.
두 번째 부인, 고 유인순씨와 사이에 2남2녀를 두었다.
“가족과의 불화”
설 창업주와 아들 원식 씨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 부정축재환수금 분담액수를 두고 법정 다툼을 벌였다. 이 싸움은 후처의 자녀 원량 씨가 그룹의 적통을 이어받자 이복형제들의 이해관계까지 얽히면서 가족 간 갈등으로 확대되는 등 다소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형제 기업’인 대한산업과 대한전선은 한때 남대문로 사옥을 같이 사용했는데 분쟁 이후 칸막이를 칠 정도로 이복형제간 왕래를 끊은 상태다.
{이코노미 플러스}, 대한전선 50년 흑자 경영보고서, 한정곤 기자, 2005년 1월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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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쿤매거진}, 창업주를 통해 본 한국경제 60년史, 2008년 8월호.
오유석, 박정희와 부패문제.
{서울신문},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대한전선그룹-故설원량 회장家,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2005년 12월 19일자.
{이투데이}, 대한전선 인송의 '여무른 꿈' 3세가 다시 꾼다, 성시종기자, 2009년 3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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