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미학의 완성자 ,앙리 까르띠에-브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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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까르띠에 브레송은 1908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섬유회사를 경영하고 있었고, 까르띠에 브레송은 어려서부터 미술을 비롯해 당대의 여러 예술적 경향들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조건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는 후일 그가 사진 작업을 통해 평생 이미지를 추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게 되는 첫 출발점이었다. 그는 처음엔 화가가 될 생각으로 1927년부터 2년 동안 그림을 공부했다. 그는 자크 에밀 블랑슈, 앙드레 로뜨 밑에서 공부하기도 했고, [브레송은 "규칙에 너무 얽매인" 로뜨의 미술관을 버거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엄격한 이론적 훈련 덕분에 그는, 회화가 아닌 사진으로, 예술 형식과 구성의 문제들을 거침없이 맞닥뜨려 해결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사진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 지 생각은 다 달랐지만, 리얼리즘 사진 유파들이 유럽 전역에 걸쳐 생겨나고 있었다. "전통을 박살내라! 있는 그대로를 사진 찍어라!"는 외침이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러한 반란의 중심에 1924년에 시작한 초현실주의 운동이 있었다.]
초현실파 작가들과 교류하면서["초현실주의 회화보다는, 브르통(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의 주창자)의 개념들이 매우 만족스러웠고 인상에 남았다. 즉, 자동표현과 직관의 역할, 무엇보다 예술은 물론 삶에서의 반란의 자세..."라고 말한 바 있다. 파리의 거리를 "목적지 없이 걷던 중 무엇을 발견"한다는 초현실주의자의 착안에 그는 많은 영향을 받았다. ] 테리아드 출판사를 드나들기도 했다.

이때부터 그의 삶은 형상(image)의 엄격성에 집중된다. 아프리카에 체류하면서 라이카 카메라를 처음 구입한 그는 멕시코, 미국 등지를 여행하면서 폴 스트랜드 곁에서 영화를 배우고, 1932년에는 줄리안 레비 화랑에서 처녀전을 열기도 한다. 또 프랑스로 귀향한 뒤로 장 르누아르와 자크 베케르 감독과 함께 영화제작에 참여하기도 한다.
스물 두 살 무렵이던 1930년 마르세이유에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평생 라이카 카메라만을 애용했다. 당시는 중형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그가 라이카를 즐겨 사용했다는 것은 그가 르포르타주 사진가로 활동한 사실과도 관련이 깊다. 1932년부터 2년 동안 스페인 지중해 연안, 멕시코, 미국의 각지를 다니면서 각종 사진을 찍었다. 은 이때에 그가 찍은 대표작이다. 1936년 봄, 그는 파리의 어느 신문사 사진부에 들어가기 위해 입사시험을 보았는데 낙방하고 말았다. 이때 헝가리 출신의 로버트 카파와 데이비드 세이무어도 응시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그날 우연히 들른 어느 카페에서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서로 교류가 시작되었고, 이날의 만남에서 의기투합한 그들은 후일 이란 사진작가들의 연합통신사를 설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