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후엽부터 16세기에 걸쳐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 퍼진 미술, 문예의 문화적인 혁신운동은 중세적인 교권주의에 입각한 그리스도교에 대한 새로운 입장뿐만 아니라 봉건 제후에 대항하는 상공 시민 계급이 도시의 발전에 따라 급부상하여 ‘자연과 인간’에 대한 현실적인 각성이 일게 되면서 일어난 운동이었다. 하지만 어렵고 괴로운 지상의 생활이 하늘나라의 행복한 생활로 향하는 일시적인 단계에 불과하다는 종교적 관념이 뿌리박힌 중세 사회의 구조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인간의 관심을 하늘나라로부터 지상으로, 그리고 내세에서 현세로 끌어내릴 수 있는 어떤 가치관이 있어야 했다. 따라서 종교적인 교의를 내세우는 삶의 가치 대신 자연과 인간에 중심을 둔 자연주의와 인문주의 사상이 현실적인 새로운 가치로 탐구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시대가 바뀌는 마당에 진취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지나간 시대에 대한 혁신을 의미하는 것인데, 바로 그러한 새로운 물결의 조짐이 13세기의 피렌체에서 싹텄다. 문학에 있어서 의 저자 단테와 회화 미술의 지오또가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단테는 과 에서 감각적인 인간 활동으로서의 상상력을 표출하여 그 중요성을 ‘부드럽고 새로운 문체’로 부각시켜 상상력에 창의적인 힘이 있음을 과시했다. 단테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선구적인 노력에 화가를 참여시키면서 의 ‘연옥’편에서, 치마부에가 회화 미술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의 명성은 멀어지고 지오또의 이름이 떠오른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의 작가 보카치오는 무지한 사람들의 눈을 매혹시키고 사라진 예술을 지오또가 새로운 예술로 소생시켰다고 말한다. 그것은 빛으로 매혹하는 모자이크와 금빛 찬란한 보석으로 장식된 비잔틴 종교 미술, 그리고 도식적이고 교의적인 중세 미술의 한계를 지오또 미술이 넘어서고 있음을 알려주는 말이다. 이렇듯이 당시의 문필가들은 중세 미술과 새로운 시대 미술과의 경계가 어떻게 그어지고 그 연결 고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간파하고 기록하였던 것이다. 단테는 치마부에와 지오또에 대한 글을 남기고, 이어서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필립포 빌라니, 첸니니 등은 당시의 토스카나 지방의 예술에 대하여 기술한 것이 있어 당시를 완성시켜 새로운 시대를 열었듯이 치마부에는 자연 모방으로 미술의 새로운 길문을 열었고 그 길을 더 개척한 지오또는 예술과 재능에 있어서 고대 화가를 능가한다고 이들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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