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에 대하여
-천주교: 故 김수환 추기경님을 뽑을 수 있다.
2. 어떠한 종교를 대표하여 참으로 비모범적이다 할 수 있을 만한 사례
- 기독교인중 한명인 故 장효희 목사를 들 수 있다.
-천주교: 故 김수환 추기경님을 뽑을 수 있다.
故 김수환 추기경님은 1922년 5월 8일, 대구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곧은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셨고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거쳐 서울의 동성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학업 중 세계 2차 대전 등으로 인해 잠시 학업을 중단하다 1947년 혜화동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 성심캠퍼스)에 복학, 1951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후 잠시 동안 본당신부 생활을 하고 난 후, 독일 뮌스터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이때 은사이신 요셉 회프너 추기경을 만나게 되고 그 분에게서 ‘그리스도 사회학 ’을 배우게 된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온 김수환 추기경님은 마산교구장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노조 탄압에 대한 반대운동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종교의 사회적 실천을 시작했다.
1968년에는 서울대교구장 자리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엔 추기경으로 서임되셨다. 당시 47세로 전세계 추기경 중 최연소였다. 이후 평양교구장 서리(직무대리인)를 겸하기도 했다. 또한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에 한국 대표로 6번을 나가기도 하는 등의 여러 대외적 활동을 겸하였다.
이후 추기경님은 1998년 서울대교구장 자리 및 평양교구장 자리를 사임한다.
그리고 작년까지도 국내외 원조사업, 백혈병 어린이 돕기, 골수•장기 기증, 국내입양운동 등의 사회적 사업을 꾸준히 펼치었다.
이와 같은 여러 사업을 펼쳐오신 김수환 추기경님은 2009월 2월 16일 선종하시게 된다.
故 김수환 추기경님은 선종하시기 전까지 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존중하고 주목하셨다. 독일에서 유학 중에도 타지에서 일하는 한국인노동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시고 도와주셨으며,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편에서 독재정치와 같은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셨다. 이러한 신념은 1987년 6•10민주항쟁 때도 명동성당에 공권력 투입이라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도 계속되었다. 추기경님의 이 신념은 70•80년대의 암울했던 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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