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항일전시기의 농민과 징세 및 국민당지배
3.전후기의 농민과 과세부담과 혁명
4장 정권 내부의 정치과정(三民主義 청년단)
5.당내정치
6.항일전쟁과 국민정부군
7.국부군의 공산군과의 싸움
8.장경국과 금원권 통화개혁
9.누가 중국을 상실했는가? ― 장개석의 증언
결론
이는 蔣介石정권의 방법에 있어서의 미진한 면도 있지만 각기 지방에 근거를 두고있는 군벌세력들의 저항과 술책 때문이기도 하다. 또 항일전쟁 시기에는 수도를 계속 서쪽으로 옮겨가면서 항전했지만 전쟁전의 政治的 聯立關契에 있던 많은 군벌들이 전쟁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국민정부에 등을 돌리고 자신의 나라에 쳐들어온 일본군 보다 더 커다란 적으로 국민정부를 규정해 버리는 등의 二律背反的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 것도 위와 같은 경향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꼭 모든 군벌이 중앙에 배타적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 귀주(貴州)나 절강(浙江)같은 省은 중경의 중앙정부에 매우 충성스러운 편이었다. 광동(廣東)의 경우도 비록 관할 사령관의 충성은 오락가락 하였으나 신임 받는 성주석이 있어서 견제가 가능했다. 여기서 주목하여 살펴볼 곳은 바로 운남(雲南)이다. 초기에는 중앙정부에 매우 우호적인 지역중 하나였으나 항일전쟁 말기에 가서 양자간의 관계는 매우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초기 운남은 지리적으로 베트남과 인접해 있어서 문화적인 혜택과도 거리가 멀고 중앙정부의 통제력도 미약한 편이었다. 그리고 雲南人의 성격도 오랫동안 고립의 영향으로 중앙에 매우 배타적이며 감정적인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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