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서간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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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사]서간도의 역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들어가며...

1. ‘사이섬’ 비석의 슬픈 운명

(1) ‘사이섬’ 비석

(2) 영토 의식

2. 서간도를 재발견하자

(1) 간도의 총체적 개념

(2) 국경과 영역

나오며...




본문내용
(2) 영토 의식
청(淸)은 1660년대 만주지역을 자기네 민족의 발상지라고 하며 봉금하였다. 조선은 정묘호란, 병자호란에서 패전을 하여 청과 군신관계를 맺고,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만주 일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봉금령을 내렸다. 하지만 생활이 어려운 서민들은 간도로 가서 터전을 일구었다. 너그러운 지방 관리들은 그들을 눈감아 주었고 점점 간도의 인구는 늘어나게 된다. 본래 논농사가 행해지지 않았지만 한족(韓族)에 의해 활성화가 되어 식량난이 어느 정도 해결된다. 변경 지역인데다가 간도를 중요시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행정업무도 하지 않았던 청은 러시아를 견제하고 활성화 되는 간도를 확보하고자 조선인들에게 청의 풍습을 그대로 따라하라고 강압하였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이러한 요구를 무시했다.
청의 간도를 빼앗기 위한 청의 주장은 이러했다. 첫째, 간도는 본래 자기네들의 행정구역인데 조선인들이 무단거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은 간도에 관심도 없었다가 간도의 중요성이 커지자 그곳의 조선 국민들을 자국 국민으로 편입하고 간도를 완전히 자국의 영토로 만들고자 억지논리를 주장했다. 과거에는 오늘날 같이 국경 경계선이라는 명확한 개념이 없었으며, 국가 간의 인접지역을 변경지역이라 하고 그 지역에 여러 사람들이 거주 하였다. 변경지역이라 하면 국가 간에 경계선으로 명확히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두루뭉술하게 일정지역을 중간지역으로 남겨놓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 청의 영토가 아닌 것이다. 영토분쟁이 있을 때 영토의식이 승소의 중요한 요소로 적용된다. 조선국민들은 간도에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터전을 일구어서 열심히 살았고 고대부터 계속 거주해왔다. 청은 관심이 없다가 간
참고문헌
『간도에서 대마도까지』/ 2005 / 동아일보사 / 임채정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