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본론
가. 식민지 근대화론
나. 일제강점기의 주요 경제정책과 양측의 입장
1) 토지조사사업
가) 개관
나) 수탈론의 입장
다) 근대화론의 입장
2) 회사령
가) 개관
나) 수탈론의 입장
다) 근대화론의 입장
3) 산미증식계획
가) 개관
나) 수탈론의 입장
다) 근대화론의 입장
4) 식민지 공업화
가) 개관
나) 수탈론의 입장
다) 근대화론의 입장
다. 일제강점기 이후의 경제 상황
라. 수탈론과 근대화론의 문제점
1) 수탈론의 문제점
2) 근대화론의 문제점
3. 결론 - 토론을 위한 제언
가. 수탈론과 근대화론에 대한 개인의 생각은 어떠한가?
나. 일제강점기 아래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나) 수탈론의 입장
식민지 시대의 한국공업의 생산구조는 한국을 일본 공업제품의 독점적 판매시장으로 개편하는 정책과 한국을 ‘대륙전진 병참기지’로 개편하려는 정책에 관련하여 형성되었다. 이 중 전자는 식민지 초기에는 회사령으로 한국을 독점적 상품판매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조선의 자생적 공업발달을 저지하고 원료의 공급지와 상품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공업 억제정책을 실시한 것이고 1920년에 이르러 일본자본이 조선에서 기반을 잡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자 4월 회사령 철폐하고 1차 대전 종료 후 일본경제 소공황을 맞은 중소자본이 한국에 진출하게 된 것을 말한다. 이 때 한국공업자본은 이미 몰락 수준에 와있었다.
이 당시 한국의 공업에서 일본인 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조선인 공업보다 월등히 높았다. 1911년부터 1920년까지의 한국에서 일본인 공업의 변화을 살펴보면, 공장 수는 185개에서 1,125개로 약 6배, 자본금은 982만 6천 원에서 1억 4,022만 9천 원으로 약 14.25배, 종업원 수는 3.9배, 또 생산액은 약 10배 증대되었다. 한국인 공업도 그 절대 수치에서는 크게 성장했지만 일본인 공업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일본인 공업의 지배적 지위는 한 ․ 일 공업회사의 자본금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납입자본에서 한국인의 경우 1917년은 1911년에 비해 그 비율이 17.2%에서 12.3%로 감소했는데 반해, 일본인 자본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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