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포퓰리즘의 사례
- 이명박 정부
- 태국의 탁시노믹스
- 프랑스의 우파 포퓰리즘
- 멕시코의 로페즈 오브라도르
3. 라틴아메리카의 포퓰리즘(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4. 라틴아메리카 포퓰리즘의 원인
5. 포퓰리즘에 대한 생각
1940년대까지 손꼽히는 경제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엔 사회의 질적 전환을 통해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산업화의 그늘에 있던, 생계가 걱정인 대중은 즉각적인 실리(實利)와 일자리에 집착했다. 게다가 엘리트에 대한 반감,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등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포퓰리즘의 확대재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민족주의와 결합된 친(親)노동정책과 분배중시의 정책기조는 지금도 남미 포퓰리즘의 주요 특징이 되고 있다
포퓰리즘이 한 나라의 경제에 치명상을 입히는 과정은 대동소이하다. 포퓰리즘에 입각한 정책은 가난한 사람에게 결코 달성할 수 없는 잘못된 기대감을 심어준다. ‘부자로부터 부(富)를 빼앗아 나눠주겠다.’혹은 ‘임금을 올려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순간, 가난한 국민은 자신의 열악한 상황이 법과 정책으로 개선될 수 있고 개선되어야만 한다는 기대를 갖게 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고의 부유국이었고, 뉴욕과 런던에 이어 세계 세번째로 지하철을 건설한 국가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로 몰려온 이민자들은 60%가 대도시에 몰려 상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정착했으나 나머지는 지방에서 농업에 종사했다. 당시 임금수준은 세계 최고인 미국과 독일과 비슷했으나, 미국과 독일이 공업 분야에 치중했던 점을 감안하면 더 높은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29년 세계 대공황을 맞으며 아르헨티나의 농축산물 대(對)수출국가가 사라졌고,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를 내수시장의 활성화로 풀려고 하며, 자유 시장경제에 정부가 관여하기 시작했다. 1930년 중앙은행 설립과 함께 곡류와 육류의 시장가격에 관여하며 생산자에게 최저가를 보장해줬다. 이 과정에서 군부가 개입하기 시작했고, 군부는 석유와 철강 산업, 해운업에서 통제라는 이름으로 경제에 참여하며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30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로베르또 오르띠즈가 1938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페론은 육군 대령으로 쿠데타에 참여하여 한직인 노동부 장관과 국방부장관, 부통령직까지 겸임하고 있었다. 그는 급여의 인상과 노동환경 개선 등으로 대체적으로 사회주의 성향을 띄고 있던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페론의 혁명적인 정책에 거부감을 느낀 반대파에 의해 투옥되지만,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등에 업고 대규모 지지에 힘입어 54%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노조만이 아니라 산업가 세력도 페론을 지지했다. 이들은 페론이 전
2) 김달관,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 :페론과 메넴의 비교 사례 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2007)
3) 정수진, “서유럽의 우파 포퓰리즘”, (성균관대 대학원 2004)
4) 철학연구회,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철학과 현실사 2004)
5) 최장집 등,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민주화 20년, 한국 사회를 돌아보다)”, (프레시안 북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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