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한국 인류학사 개괄
2) 송석하를 선택한 이유
2. 송석하의 민속학 연구
1) 한국 민속학을 일으켜 세운 민속학자 송석하
(1)약력
(2) 송석하의 민속학 연구: 연구대상 및 방법
가. 송석하의 민속학에 대한 인식(한양명 1996:67-68)
나. 주요 연구 대상(한양명 1996:71-73)
다. 연구방법(한양명, 1995:45-50)
2) 송석하의 문화민족주의: 오락 선도론(남근우 2002:108-112)
3. 송석하의 한국인류학적 의의
1) 송석하 연구가 갖는 학사적 의미와 성과
2) 송석하 연구의 한계점과 한국 민속학의 계승
4. 결론
■ 참고문헌
송석하는 생전에 총 97편의 글을 발표하였으며 이 중 민속 관련의 글이 56편을 차지한다. 이는 그가 전업적 민속학자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가운데 53편의 글이 1929년에서 194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발표가 되었다. 신문, 잡지 및 동호회지, 학회지 및 학술관련 서적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글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그가 추구한 민속학의 한 방향이 민속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있었음을 말해준다.
민속관련 논문을 대상별로 살펴보면, 민속극 18편, 민속예술과 놀이 17편, 민속신앙 4편 등이다. 따라서 그의 주된 관심이 오락, 즉 공연민속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송석하는 민속극, 민속음악, 민속미술 등을 아울러서 민속예술이라는 개념에 포괄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민속극, 민속음악, 민속놀이를 아울러서 오락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하였다. (송석하, 1960:306-312; 한양명 1996:71)
한양명은 송석하가 민속연구의 주된 대상으로 왜 오락을 삼았는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선 송석하는 민속현상 가운데 오락이 갖는 의의를 높게 평가하였다. 그는 오락은 사람의 본능이며 정신의 피로 해소를 위해 필연적으로 인생에 필요한 것이라고 보았다. 두 번째로 그는 해당 민족의 풍토 속에서 전승된 오락이라야만 그 민족의 구성원들에게 절실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 민족의 오락은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그 민족의 개선된 장래의 문화를 약속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송석하, 1960:315) 더욱이 오락은 직접 보고 들을 수 있고 대중에게 가장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행위민속이라는 점에서 송석하가 추구하는 신문화 건설에 적절히 부합되는 것이었다. 세 번째로 그는 오락을 민속학의 학문적 독자성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며 동시에 자신을 다른 민속연구자들로부터 구분시켜주는 영역으로 인식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민속예술을 포함하는 소위 오락에 관심을 집중한 것은 전술한 오락의 문화적 의의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그의 학자적 정체성의 확보라는 측면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자면 그의 관심이 오락에 집중된 것은 이 분야의 민속현상이 갖는 문화적 의의에 대한 주목과 신문화건설에의 활용가능성에 대한 착안, '사회현상 중 특수한 부분'을 다루는 민속학의 독자성 제고, 본인의 학자적 정체성 확보 등의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 연구방법(한양명, 1995:45-50)
김택규,1994, "학회활동을 통해 본 한국민속학의 좌표",『한국민속연구사』, 지식산업사.
남근우,2002, "조선 민속학과 식민주의 ; 송석하의 문화민족주의를 중심으로",『한국문화인 류학』35:99-126.
장주근,1991, "송석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경수,1999,『한국인류학백년』일지사.
한양명,1995, "석남 송석하의 민속연구 재론", 『한국민속인물사 (1)』24:35-57.
1996,"석남 (石南) 송석하의 민속연구와 민속학사적 위상",『한국민속학』 28:65-83.
대한지방행정공제회 편집실, 1997, "이달의 문화인물 : 고유민속의 계승과 대중화에 힘쓴 민속학자 송석하", 『지방행정』46(519):13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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