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지리 및 인구
3.역사
4.요르단내전(1970~1971 vs 팔레스타인)
5.요르단과 팔레스타인난민
6.문화
7.대한관계
지구대 동부의 요르단은 표고 500m, 1,000m의 완만한 고원상을 이룬 암석 사막지대이다.
지구대의 서쪽은 지중해성 기후로 하계에는 고온·건조하고, 동계에는 저온·다습하여 500㎜ 정도의 비가 내린다. 동부는 스텝 사막지대로 강우량이 200㎜ 미만이다.
요르단강 동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르단의 국토는 해발고도 1,000m 내외의 아라비아고원 북서단에 해당된다. 고원은 서쪽 기슭으로 갈수록 높아지며, 최고봉은 무브라크산(1,727m)이다. 고원 서쪽에는 너비 20km 내외의 요르단 지구대(地溝帶)가 남북으로 뻗어 있고, 요르단강이 지구대를 따라 남류하는 가운데 사해를 이루고 사해는 해면하(海面下) 394m의 저지대 호수이다. 요르단강 서안은 해발고도 1,000m가 못 되는 팔레스타인의 산지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서안은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 비가 많이 내리며, 비교적 따뜻하다. 요르단 지구대와 동안(東岸)의 고원은 매우 건조하여 겨울에 비가 다소 내리긴 하나 수도 암만의 연강수량은 300mm 이하이다. 여름의 더위는 대단하여 40℃를 넘는 때도 많으며 겨울은 사뭇 추워 산지에서는 눈도 내린다. 동안의 대부분은 사막으로 시리아· 아라비아사막으로 이어진다. 전체 국토면적 92,300 평방 km 중에서 경작가능지는 3.32%, 농경지는 1.18%, 황무지 등 기타 95.5% (2005년)이다.
요르단은 요르단강(요단강)·암몬·모압 등 구약 및 신약성서에 나오는
장소가 많아 고대부터 역사에 등장하지만 주변국의 침입이 잦아 제국을 형성하지 못하였다.
6세기 이후 아랍인에게 정복되어 이슬람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16세기 이후에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속령(屬領) 시리아의 일부가 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9년에는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놓였다. 이때 영국은 오스만 제국의 붕괴를 노려서 ‘아라비아의 로렌스(T.E.로렌스)’ 등을 이용하여 아랍인의 반란을 지원, 메카의 셰리프·후세인에게 아랍의 독립을 보증(1915년의 맥마흔선언)하고, 한편으로는 유대인의 시오니즘 운동에 대해서도 팔레스타인에서의 건국을 약속(1917년의 밸푸어선언)하였다.
1923년에 히쟈즈 왕국의 왕족 압둘라-빈 후세인을 영입하여 트란스 요르단 왕국을 세웠고,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6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후세인 1세가 즉위하고부터 지금의 국명으로 개칭되었다.
1950년에는 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 강 서안지역을 영토에 추가하였으나,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빼앗기게 되었다. 중동전쟁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에 점령된 지역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인이 유입되었다.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에서는 요르단강 서안을 이스라엘에게 점령당하고 국가는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급속히 대두한 PLO(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팔레스타인해방기구) 등의 게릴라 세력이 동안에 강대한 힘을 구축하고 ‘국가 안의 국가’로서 후세인 왕제와 정면으로 대립하였다.
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에서는 시리아와 공동으로 아랍측 전열(戰列)에 가담하였으며, 이때 골란고원 일부를 이스라엘에 점령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1974년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서 열린 아랍 정상회담에서 PLO가 팔레스타인인의 정당하고 유일한 대표임을 결의하였을 때 이것을 받아들여 서안 지역의 지배를 포기하였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과 같은 해 발생한 제1차 중동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 건국 후 살던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요르단으로 유입되기 시작했고, 이들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은 1964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조직하여 요르단을 기지 삼아 게릴라전 방식으로 이스라엘에게 저항하였다. 이에 이스라엘은 PLO 등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의 기지가 된 요르단을 이따금씩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이스라엘의 자국영토 공격에 분개한 요르단 후세인 국왕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참전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3차 중동전쟁에서 패한 후 PLO 등 팔레스타인 게릴라단체들은 이틈을 틈타 세력을 확대해나가기 시작, 이들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은 요르단에서 비공식적인 정부인양 행세하였고, 천서방 ․ 친미 성향의 하심가가 지배하고 있는 요르단 현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마각을 드러내어 결국 1970년 9월 요르단 후세인 국왕은 군부지도자들로부터 요르단 내부의 PLO 등 팔레스타인 무장 게릴라단체들에 대한 강력한 진압을 명령하게 된다. 같은 해 요르단 정부군이 요르단 국내의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들의 기지를 공격하면서 이로서 요르단은 요르단 정부군과 팔레스타인 게릴라 세력 간의 사실상의 내전상태로 돌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집트의 조정 하에 양측 모두 정전에 합의하게 된다. 하지만 이듬해인 1971년 요르단 정부는 정전을 깨고 다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 대한 무력진압을 재개하면서 결국 요르단의 내전 상황은 PLO와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요르단 강제 추방과 후세인 1세 요르단 국왕의 왕권 강화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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