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두레와 집강소의 자치 경험

 1  조선 후기 두레와 집강소의 자치 경험-1
 2  조선 후기 두레와 집강소의 자치 경험-2
 3  조선 후기 두레와 집강소의 자치 경험-3
 4  조선 후기 두레와 집강소의 자치 경험-4
 5  조선 후기 두레와 집강소의 자치 경험-5
 6  조선 후기 두레와 집강소의 자치 경험-6
 7  조선 후기 두레와 집강소의 자치 경험-7
 8  조선 후기 두레와 집강소의 자치 경험-8
 9  조선 후기 두레와 집강소의 자치 경험-9
 10  조선 후기 두레와 집강소의 자치 경험-10
 11  조선 후기 두레와 집강소의 자치 경험-11
 12  조선 후기 두레와 집강소의 자치 경험-1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조선 후기 두레와 집강소의 자치 경험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언
Ⅱ. 두레와 집강소의 조직과 운영
1. 임원의 조직과 선출
2. 두레 조직과 농민 항쟁
Ⅲ . 두레와 집강소의 자치 경험
1. 두레회의의 자치적 성격
2. 집강소의 자치적 성격
Ⅵ. 두레․집강소와 부세․토지문제
Ⅴ. 결 어
본문내용
Ⅱ. 두레와 집강소의 조직과 운영

1. 임원의 조직과 선출
두레와 집강소가 비록 한정된 지역에서나마 의견을 모으고,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임원이 선출되고 조직되어야 함은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우선은 이 두 기구의 조직과 임원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간략히 살펴보겠다.
두레의 임원에 관한 기록은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몇 가지 연구 성과를 살펴보면, 먼저 朱剛玄씨는 進貰冊 進貰冊은 두레에서 신입례로서 선배들에게 술과 음식 등을 대접한 내역을 기록한 문서이다.(국립민속박물관,『생활문화와 옛문서』, 국립민속박물관, 1991.)
에 보이는 座上이란 명칭과 영암 지역에서 실시되고 있던 향약 규정에 보이는 公事員․掌議․有司 등의 명칭, 그리고 현지조사를 통해 다양한 임원의 명칭을 밝혀냈다. 朱剛玄씨는 두레는 座上과 領座, 公員과 有司, 總角大方과 小童, 그 밖의 공통성을 지니지 못하는 역원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주강현,『한국의 두레』1, 집문당, 1997, p.221)
그리고 金龍德씨의 경우에는 두레의 임원이 대개 行首․都監․首總角․調査總角․有司․放牧監 등 6명으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金龍德,「朝鮮後期의 地方自治; 鄕廳과 村契」,『국사관논총』3, 국사편찬위원회, 1989. p.152.
이러한 기존의 연구를 정리하면 의 내용과 같다. 임원의 명칭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두레의 단위가 전국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그 명칭도 통일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명칭이 각기 다르더라도 대체로 비슷한 구성을 이루고 있었는데, 책임자 1인과 그 아래 역할에 따른 임원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외의 壯丁들은 일괄적으로 두레꾼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단편적인 자료로 의사소통의 과정을 유추해 본다면 領座로부터의 지시가 都監을 중심으로 한 여러 임원에게 먼저 전달되고, 임원을 통해 다시 두레꾼에게 전달되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두레꾼의 의견이 임원을 거쳐 다시 領座에게로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領座(座上․行首․領首․班首․座長 등)
두레의 대표, 책임자로 두레의 모든 일을 지휘
都監(公員․執事․少任 등)
영좌를 보좌하고 명령 지시를 두레꾼에게 전달
秀總角(總角大方)
작업장에서 작업진행을 지휘
調査總角(靑首․진서꾼)
수총각을 보좌, 작업장에서 게으름을 피는 자를 감시
有司
두레의 회계와 서기의 일을 맡음
放牧監
방목하는 소로부터 농작물을 보호


참고문헌
東學農民戰爭百周年紀念事業推進委員會,『東學農民戰爭史料叢書』1․5, 경인문화사, 1996,
『朝鮮王朝實錄』,『承政院日記』
국립민속박물관,『생활문화와 옛문서』, 국립민속박물관, 1991.
김종익 역, 『번역 오하기문』, 歷史批評社, 1995, p.176.


주강현,「두레의 組織的 性格과 運營方式」,『역사민속학』5, 한국역사민속학회, 1996.
주강현,『한국의 두레』1․2, 집문당, 1997.
愼鏞厦,「두레共同體와 農樂의 社會史」,『한국사회연구』2, 한길사, 1984.
愼鏞廈,「甲午農民戰爭 시기의 農民執綱所의 設置」,『韓國學報』41, 일지사, 1985.
愼鏞廈,「甲午農民戰爭 시기의 農民執綱所의 活動」,『韓國文化』6,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85.
愼鏞厦.「甲午農民戰爭과 두레와 執綱所의 폐정개혁 ; 農民軍 편성, 執綱所의 土地政策, 茶山의 閭田制․井田制 및 '두레'의 관련을 중심으로」,『한국사회사연구회논문집』8, 문학과 지성사, 1987.
愼鏞厦,『東學과 甲午農民戰爭硏究』, 一潮閣, 1993,
愼鏞厦,『동학농민혁명운동의 사회사』, 지식산업사, 2005,
金容燮,「朝鮮後期 土地改革論의 推移」,『동방학지』62, 연세대 국학연구원, 1989.
高承濟,『韓國村落社會史硏究』,일길사, 1977.
韓相權,「조선후기 향촌사회와 향촌사회조직 연구현황」,『韓國中世社會 解體期의 諸問題 』下, 한울, 1987.
金仁杰,「19세기 전반 官主導 鄕村統制策의 위기」,『국사관논총』6, 국사편찬위원회,1989.
金仁杰,「朝鮮後期 村落組織의 變貌와 1862年 農民抗爭의 組織基盤」,『진단학보』67, 진단학회, 1989.
金龍德,「朝鮮後期의 地方自治; 鄕廳과 村契」,『국사관논총』3, 국사편찬위원회, 1989.
金容德,「朝鮮後期의 社會와 思想」,『한국사상사대계』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2.
李海濬,「村落의 組織과 運營關聯 古文書資料」,『고문서연구』2, 한국고문서학회, 1992.
이해준,「조선후기 향촌사회질서의 변화와 기층민문제-연구시각과 방향을 중심으로-」,『대구사학』37, 대구사학회, 1989.
이해준,「한국의 마을문화와 자치·자율의 전통」,『한국학논집』32,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05.
朴京夏,「朝鮮後期 村落民組織과 村契」,『정신문화연구』5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李泰鎭,「18세기 韓國史에서의 民의 사회적․정치적 位相」,『震檀學報』88, 1999.
김신재,「집강소의 역할과 성격」,『동학연구』18, 한국동학학회, 2005.
이경식,『한국 중세 토지제도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