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차 인티파다
제 2차 인티파다
1/2차 인티파다 비교
3차 인티파다 가능성과 향후 전망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점령지의 주민들이 자치정부를 갖는다
양국은 3개월 내에 평화 조약에 서명한다
팔레스타인 자치안(별지)
팔레스타인 지방 의회 선거를 실시한다
5년간의 과도기를 거쳐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최종 지위가 결정된다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은 성공(1979. 5.26.),
팔레스타인 자치안은 협정 실패(1980. 5.26.)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 영토확장
요르단강 서안지역(웨스트뱅크)
동 예루살렘
가자지구
골람 고원
시나이반도
캠프 데이비드(1978) 협정 이후
시나이반도 반환(1982) = 이집트와 문제해결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 문제해결 난항
= 팔레스타인과 문제 지속
팔레스타인 문제해결의 필요성 국제사회에 홍보
일방적인 이-팔 관계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동정여론 형성
이스라엘에 유엔을 비롯한 미국 등의 평화압력이 가중
비폭력적 봉기
이전의 테러나 게릴라전에서 파업, 시위, 불매운동 등으로 저항수단 다양화
“테러의 포기 선언” – 아세르 아라파트 PLO 수장, 1947년 UN총회
일부 폭력조직의 무장투쟁에서 전 민족이 참여하는 봉기로 발전
유대인 정착촌 및 팔레스타인 영토 확정 방안
약 20만 명이 살고 있는 정착촌 중 4만 명 가량이 살고 있는 정착촌의
관할권을 팔레스타인 측에 이양
유대인 정착촌 주민 중 80%가 살고 있는 나머지 정착촌은 3개 지구에 모아
이 지역을 이스라엘 영토에 합병
기타 60여 개의 이스라엘 정착촌은 형식상 팔레스타인 주권 하에 들어가나
철거되지는 않으며, 이곳에 거주하는 4만 여명의 안전보장 요구
궁극적 갈등 해결하지 못하고, 난제 지속
이스라엘 : 자국민의 보호 최우선
팔레스타인 : 정치/경제/종교적 불만 점층
폭력적 봉기 / 강압 진압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극단적 수단(자살폭탄테러)
동원테러 목표 : 이스라엘 군사시설, 군인 → 민간인까지 확대
이스라엘 강력 진압(무장 헬리콥터, 탱크, 전투기)
국제사회 노력 유명무실
클린턴(미), 시라크(프), 무바라크(이집트), 코피 아난(UN) 중재 노력 실패
정착촌의 ‘자연적 성장’이란
가족을 이루는 과정에 따른 자연적인 인구 증가 → 정착촌 성장 → 동결 불가
→ 미국과도 의견 대립
제 3차 인티파다 가능성
팔레스타인 협상의제 :
영토확정, 분리장벽 및 정착촌 철거, 동 예루살렘 지위,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 모든 문제 해결 가능성 회의적 → 가능성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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