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본론
1) 1919~1920년 윤치호의 행적에 대한 고찰
- 3.1운동과 관련하여
2) 민중의 움직임
3) 3.1운동기 기독교계의 움직임
3. 결론
근대적 ‘나’를 형성 : 근대국가의 힘, 그 담론의 포괄성, 자기 완결성에 압도당함.
지배층 개화파의 패배의식적 민중관 : 1899년 1월, 독립협회가 강제 해산당하고 동지들이 잡혀가도 고종이 제시한 덕원감리의 직을 순순히 받아들여 서울을 떠나는, 고종에게 끝까지 도전장을 던지지 못한 윤치호의 모습에서 당시 유산층 개혁가의 전형적 행동양식을 엿볼 수 있음. (유영렬,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서재필, 윤치호 등 미국을 선망하던 개화파들은 시민혁명을 겪은 미국을 선망하되 자신들이 시민혁명을 재현할 생각은 하지 않음.
(박노자,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 박노자의 한국적 근대 만들기’)
조선인의 자질
“일부 지역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조선이 독립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잘못 안 것이다-지방 공무원들이 자기들에게 심게 했던 나무들을 모두 베어버렸다. 이 무식한 사람들은 너무도 몰상식한 나머지 정작 독립이 되면 나무가 더 많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일기, 111)
“조선의 노인들은 조혼이라는 악마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즐거움만 추구하는 대단히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기 아이들이 훗날 가정을 화목하게 꾸려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이 노인들은 조선의 독립을 보고 싶어한다.” (일기, 171)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된 해외 독립 운동가들은 전 민족적인 독립운동을 계획
기독교인들을 통해 국내 독립운동가들과 접촉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 측은 16인이 포함
3.1만세운동 당일 12개의 주요도시에서 교회 혹은 기독교 계통의 학교가 중심이 되어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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